그 모진 삶 속, 어찌 이런 글들을 남기셨소
사람들은 권정생을 밀리언셀러 작가로 기억하지만 산문집에 비친 그의 삶에는 힘든 생활과 뼈아픈 질병밖에는 없었다. 19세에 발병한 결핵이 신장, 방광을 넘어 전신 결핵으로 이어졌다. 겨울밤의 고통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소변보기가 어려워졌다. 10분, 5분으로 변소에 드나들어야 했다. 아예 깡통을 기도하는 옆에다 갖다 놓고 밤을 새웠다. ‘주여’ ‘주여’를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 사이에 ‘어이 추워, 어이 추워’로 바뀌어 버린다.” 지쳐 까무룩 잠이 들어 깨보면 어느새 온통 바지가 젖어있었다. 새벽에 우물에 가서 손수 바지를 빨며, 고인은 서럽게 울었다.
가난한 집의 부담을 덜어주려 집을 떠난 고인은 3개월 동안 구걸을 하며 보내기도 했다. 현실은 참담했지만 문학만은 아름다웠다. ‘거지를 만나/우리는 하얀 눈으로/마주 보았습니다/서로가/나를 불행하다 말하기 싫어/그렇게 헤어졌습니다/삶이란/처음도 나중도 없는/어울려 날아가는 티끌같이/바람이 된 것뿐입니다.’(시 ‘거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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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고인이 된 아동문학가 권정생이 생전 홀로 살던 경북 안동시 일직면 집 앞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전선을 잘라서 만든 빨래집게가 눈에 띈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제공
고인이 아껴 모은 10억 원과 인세는 2009년 설립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 돌아갔다.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널리 사랑받아 매년 1억5000만 원의 인세가 재단의 운영비로 기탁되고 있다. 6·25전쟁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여자아이를 그린 ‘몽실언니’는 요즘도 매년 4만 부가 팔린다. 재단은 매해 전국 소외지역 공부방에 총 1만1000권이 넘는 책을 지원하고 있으며,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급식 지원과 결핵사업 지원에도 매년 3900만 원을 후원하고 있다. 앞으로는 국내 어린이들을 위한 장학사업에도 나설 계획이다. 고인의 보석 같은 동화 작품들이 그의 분신처럼 남아 어린이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