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정 객원논설위원·기초과학연구원장
최근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당장 살기 어려운데 미래를 위한 투자인 과학기술 R&D 예산을 줄여 복지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나라에서 과학기술 예산은 축소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필요한 복지 예산은 늘려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아무리 어려운 기근이 닥쳐도 내년에 심을 곡식의 씨앗은 끝까지 남기려고 노력했다. 씨앗이 내일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내일을 위한 씨앗은 바로 교육과 과학기술이다. 교육과 과학기술의 투자를 줄이는 것은 미래의 희망을 갉아먹는 일이 되기에 신중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과학기술 투자
국가의 미래 투자가 그렇게 근시안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4월 미국 과학한림원에서 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과학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과학은 우리의 번영과 안보, 건강, 환경,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오늘 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과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그러고는 정부 기초연구비의 확대, 특히 대학원생에 대한 지원을 3배 늘릴 것을 약속했다.
사실 기초연구의 성과는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페니실린 X선 반도체 레이저 등이 모두 호기심에서 시작한 기초연구의 산물이다. 이를 통해 질병의 진단과 치료의 획기적 진전 및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개발이 가능해졌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과학문명의 산물 없이 사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초연구는 많은 불확실성이 있다. 어느 연구가 성공할지, 어느 연구가 인류의 문명을 바꾸는 큰 성과가 될지 알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기초연구의 성과는 일반적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기 때문에 꼭 최초 개발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어느 나라나 기초연구 투자는 기업보다는 정부가 한다.
왜 우리나라 정부가 해야 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기초연구 결과는 대부분 논문으로 발표되니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기초연구의 성과를 이용하여 응용연구만 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이 전략을 썼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선진국을 쫓아가는 입장에서는 가능하지만, 남보다 앞서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
기초과학硏, 지적 재산 생산 책무
기초과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정부출연연구소인 기초과학연구원이 출범해 이달 17일 개원한다. 그 책임자로서 책무를 절감하면서 한국 기초과학이 세계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
오세정 객원논설위원·기초과학연구원장 sjoh@mulli.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