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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12명 ‘시인세계’ 여름호에 부모님에 대한 추억 담아

입력 | 2012-05-04 03:00:00

나에게 어머니는 부처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이 세상이 극락이다




정일근 시인(54)은 1998년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시인은 나이 마흔에 어머니 앞에서 발가벗었고 노모는 눈물과 기도로 환자가 된 아들을 씻겼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에게 갑상샘 암이 발견되자 이번에는 시인이 집과 병원을 오가며 간병했다. 어머니의 속옷 빨래를 하던 시인은 이때 처음 어머니의 분홍 꽃 팬티를 보았다. 쉰 넘어서야 어머니도 ‘여자’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노모가 퇴원하던 날 시인은 부끄러워하는 어머니를 씻어드리며 껄껄 웃었다. “어무이요, 백옥 같은 피부가 다시 시집가도 되겠습니더.” 시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어머니, 병마를 이겨내고 이젠 건강을 찾은 어머니…. 시인은 말한다. “나에게 어머니는 부처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이 세상이 극락이다.”

세상을 떠나시고 난 뒤에야 절절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이름, 어머니 아버지. 김종길 김종해 오탁번 문정희 신달자 문인수 등 시인 12명이 부모님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시와 짧은 산문에 담았다.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여름호의 기획특집 ‘시인이 쓴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다.

김종해 시인(71)의 어머니는 네 남매를 혼자서 길렀다. 겨울 새벽 부둣가에서 노동자들에게 술국을 팔던 어머니. 어느 해인가 온 식구의 생계가 걸린 막걸리 밀주를 빚어 팔다가 단속에 걸렸다. 실랑이 끝에 건넌방 구들장 밑에 숨겨둔 술독을 곡괭이로 깨뜨리며 어머니는 펑펑 울었다. 이젠 머리가 하얗게 센 시인은 어머니를 그리며 시 ‘사모곡’을 쓴다.

‘지상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가장 아름다운 여인은/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나의 별로 돌아가기 전에/내가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이름/어·머·니’

여러 원로 시인이 아직도 부모와 이별한 때를 가장 선명히 애끓는 기억으로 갖고 있다. 그 혼절하는 아픔도 절절한 시로 태어났다. 오탁번 시인(69)은 시 ‘꽃으로 피어난 어머니’에서 하관의 밧줄이 흙에 닿는 순간 어머니의 ‘어…’ 하는 모음만 불렀다고 토로한다. 신달자 시인(69)은 시 ‘아버지의 빛’에서 아버지를 땅에 묻은 뒤 하산하는 길에 땅을 밝는 일 자체가 발톱 저리게 황망했다고 회고한다.

문인수 시인(67)은 2009년 12월 모친을 잃었다. 향년 99세로 세상을 뜬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6·25전쟁, 절량농가, 초근목피 등 질곡의 삶을 좁은 어깨에 지고 살았다. 시인이 울며 쓴 시 ‘하관’은 이렇다.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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