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좌우하는 집중력의 원천은 ‘튼튼한 육체’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마침내 소문으로만 듣던 도시의 입시 교육을 받게 됐다. 3년 내내 꼭두새벽부터 한밤중까지 교실에 앉아있어야 했다. 이것이 문명의 혜택이라니, 정말 끔찍했다. 물론 정규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황무지 개간을 했던 교육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있었던 도시의 최상급 교육은 훨씬 더 나빴다. 그건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청춘이 속절없이 시들고 부질없는 원망만 키우는 감옥. 그렇게 했으니 그나마 대학에 간 거 아니냐고? 한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아예 고등학교 진학부터 불가능했으리라. 공부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그 질을 결정짓는 건 집중력이고, 집중력의 원천은 어디까지나 몸이다.
그로부터 30여 년, 강산이 세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학생들의 처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더 심해졌다. 그때는 도시에서나 가능했던 ‘최상급 교육’이 지금은 시골 구석구석까지 시행되고 있다. 그래서 참, 궁금하다. 그럼 10대들의 그 넘치는 에너지는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떠돌고 있을까?
요컨대 집중력 향상이건 폭력 방지건 정말로 대책을 마련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몸의 원리’를 탐구해야 한다. 우주에 사계절이 있듯이 인생에도 춘하추동이 있다. 몸의 생리 역시 이 리듬을 탄다. 절기를 모르고서 농사를 지을 수 없듯이, 몸의 리듬을 모르고서야 어찌 교육이 가능할 것인가. ‘자연과 생명은 오직 순환과 운동이 있을 뿐이다.’(‘동의보감’) ‘통즉불통(通則不痛·통하면 아프지 않다, 혹은 痛則不通·아프면 통하지 않는다).’ 피상적인 차원의 소통이 아니라 생명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순환에 눈을 돌릴 때다.
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