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민경 시인·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7세 때 일이다. 가게 영업이 끝나기 전, 나는 손님이 없는 홀에서 물총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상상의 공간은 무진장 넓었다. 나는 총잡이가 되어, 보이지 않는 적들에게 총을 쏘아댔다. 그러나 블록버스터 규모인 내 상상을 감당하기엔 우리 가게 홀은 너무 좁았다. 나는 창문을 열고 허공을 향해 물총을 쏘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가 길을 지나갔다. 놀이에 취한 탓인지 나는 사람에게 물총을 쏘고 싶어졌고 정말 쏘았다. 그것이 내가 사람을 향해 총을 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내 총알(?)은 정확하게 그녀에게 명중했고 그녀는 2층 창문에 매달려 있던 나를 올려다보았다. 당황한 나는 그만 창문 밑으로 쏙 숨어 버렸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더 이상 상상 속의 흥미진진한 놀이도 내가 총잡이라는 것도 재미있지가 않았다. 나는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방에서 나와야 했다.
나는 부끄러웠다. 죄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아서 양심에 찔렸었는지, 죄를 짓고 숨어버린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완전범죄를 만들지 못한 서툰 나 자신이 쪽팔렸던 건지, 알 수 없다. 이 모든 게 복합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때의 무안함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 뒤론 한 번도 총기를 소지해 본 적이 없다. 인형보다는 사내아이들의 장난감을 더 좋아한 나였지만, 총이나 물총은 한 번도 사지 않았다. 그것들은 나에게 부끄러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나는 총을 잃어버린 채 자라났다.(그럼에도 어린애가 보면 안 되는 영웅본색 시리즈는 참 좋아했다. 대리 만족이었을까?)
어른이 된 지금에도 나는, 변함없이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면 곧잘 숨어버리곤 한다. 귀찮은 일에 얽히는 게 싫어 숨는 것이다. 이제 아무도 나를 찾아와 총을 달라고 말하지 않지만, 나는 어린 날의 그때처럼 자꾸 부끄러워진다. 예전에는 총을 쏘고 숨어버렸지만 지금은 숨음으로써 총을 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있지도 않은 총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인 채로 자랐나 보다. 총을 쓰기 싫어서 숨는 것이 곧 총을 쓰는 일과 마찬가지 아닐까. 어느새 나는 그날의 아주머니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런데도 아직 덜 자란 나는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리둥절하다. 결국 내 이야기는 쓸 만한 알레고리가 되지 못했다.
그냥 우리 웬만하면 사람한테 총을 쏘지 말죠. 물총이든, 무관심의 총이든 말이에요. 비록 총잡이가 멋있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