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에 빠질수록 ‘기억’에 붙들려 감성과 지성 퇴행 <13>멜로의 함정
MBC 제공
‘해품달’을 예로 들어보자. 해를 품은 달을 사자성어로 말하면? 개기일식. 천지가 암흑 속에 빠져드는 시간이다. 첫사랑의 미혹 속에 천지가 다 깜깜해진다는 의미에서라면 이 제목은 아주 그럴싸하다. 한 나라의 제왕이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다면? 폭군이 될 징조다. 역사적으로 모든 폭군의 시대엔 ‘경국지색’이 있었다. 포사와 서시, 그리고 양귀비. 이 아리따운 여인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인해 천하는 도탄에 빠졌던 것이다. 이게 바로 ‘리얼리티’다. 그런 점에서 ‘해품달’의 마지막이 온통 피바람으로 장식된 건 당연지사다. 첫사랑을 지키기 위해 저토록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다니. 멜로는 참, 잔혹하다.
악당들이니 당연하지 않느냐고? ‘선과 악’ ‘적과 우리’를 선명하게 구분하는 이분법 역시 멜로의 미망 가운데 하나다. 삶은 결코 이분법이 아니다. 게다가 정치권력의 한복판에서 그게 가당키나 한가? 그래서 멜로에 빠질수록 감성과 지성은 자꾸 퇴행할 수밖에 없다. 멜로가 늘 기억에 붙들려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멜로가 그려내는 건 ‘지금 여기’의 사랑이 아니라 ‘그때 거기’, 다시 말해 오래전에 지나간 사랑의 이미지 혹은 그림자다. ‘해품달’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것 역시 작품 자체가 아니라 남자 주인공의 이미지였다. 부와 권력, 말끔한 외모에 지독한 순정, 그리고 남성적 카리스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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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열증적 배치 속에서 ‘청춘의 에로스’는 왜곡되고 변형된다. 한 번도 그 생명력과 직면하지 못한 채 콤플렉스 아니면 변태의 온상으로 규정되어 버린다. 그래서 멜로는 함정이다. 사랑은 물론이고 삶조차도 잠식해 버리는!
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