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사회부 차장
6개월 후 다시 찾은 그 식당은 폐업해 있었다. ‘그토록 잘되던 식당이 문을 닫다니….’ 이런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미리 손님을 모아 방송국에도 섭외를 해놓고 장사가 잘되는 것처럼 위장한 뒤 다른 사람에게 비싸게 넘겼다는 얘기였다. 그 식당을 맛집으로 소개한 방송 내용은 허위였거나 적어도 과장인 셈이다.
올 1월 가족과 충남 서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점심시간에 굴밥 집을 찾았다. ‘○○방송에 나온 집’이라는 간판에 솔깃해졌다. 식당 안에는 방송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하는 주인의 화면 캡처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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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집이 방송에…”라는 푸념만 나왔다. 놀랍게도 인근에 몰려 있는 20여 개 굴밥 집 대부분에도 ‘방송에 나온 집’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물어보니 굴밥 거리가 소개되면서 스쳐 지나가듯 짧게 간판이 방영됐다고 한다. 방송에 나오긴 나온 셈이다.
요즘 음식을 소재로 한 각종 방송 프로그램이 앞다퉈 방영되고 있다. 한류 붐을 일으킨 드라마 ‘대장금’ 이후 연예 시사 교양 등의 음식 테마 프로그램이 크게 늘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식욕을 자극하는 콘텐츠라는 점에선지 대체로 내용의 질이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 하지만 시청자에게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해 반드시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해야 한다. 그런데도 최근 부실하게 제작된 일부 음식 프로그램을 지켜보면 안타깝다. 맛집을 선정할 때부터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음식의 맛과 질, 서비스는 수준 이하인데도 ‘방송만 타면 대박’이라는 생각으로 방송에 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외식업주들은 그렇다고 치자. 방송인들까지 여기에 부화뇌동해서 부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행태를 보여선 안 된다. 세계적인 식당·여행가이드 책자인 ‘미슐랭가이드’가 철저한 검증과 분석을 통해 그 권위를 지켜가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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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오락 프로그램에 유명한 요리사와 연예인이 함께 출연해 식재료 가격을 맞히는 게임이 진행됐다. 각종 홈쇼핑에 출연하며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조리사는 쌀 20kg(2012년 1월 소매가 기준)의 가격을 2만 원이라고 했다. 실제는 5만 원 안팎이다. 그는 “쌀값이 그렇게 비싸”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를 지켜본 농민들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음식 관련 방송물은 그것이 미치는 영향력과 파장을 고려해 전문가의 검증과 자문을 꼭 거쳐야 한다. 제작 과정에서 공정성 객관성 전문성을 지켜야만 ‘먹는 것 가지고 장난을 친다’는 말을 듣지 않는다.
<한식·중식·양식 조리사>
이기진 사회부 차장 doyo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