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 논설위원
선거 결과를 풀어볼 수 있는 ‘숨은 코드’는 3위를 한 민주당의 힘이었다. 민주당 정흥진 후보는 9614표를 얻었다. 1, 2위 후보 표차의 16배가 넘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민주당은 열린우리당 분당(分黨)으로 지지 세력이 쪼개졌다. 친노(친노무현)와 김대중 전 대통령(DJ) 세력이 정면충돌한 것이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탄핵연대’를 밀어붙이자 당시 여권의 지지층은 두 동강 났다. 열린우리당 낙선의 캐스팅보트를 민주당이 쥔 것이다.
당시 서울 전체 48개 선거구에서 민주당은 서초갑 등 3곳을 제외한 45곳에 후보를 냈다. 개표 결과 민주당은 단 1석도 못 얻었지만 한나라당은 16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탄핵연대’의 직격탄을 맞아 열린우리당이 근소한 표차로 석패한 곳은 종로구와 중구, 용산구 등 10곳에 달했다. 이곳에선 민주당 후보가 얻은 표만 흡수했어도 당락이 충분히 바뀔 수 있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활약도 무시할 수 없지만 한나라당이 개헌 저지선을 훌쩍 넘긴 121석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엔 이처럼 유리한 선거구도가 깔려 있었다. 한나라당은 ‘탄핵연대’의 최대 수혜자였다.
광고 로드중
야권은 선거구도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다. 민주통합당을 만들어 DJ민주계와 친노세력을 아우른 뒤 2단계로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이뤘다. 8년 전 탄핵연대를 정확히 뒤집어 놓았다. 야권연대로 옛 민주노동당(2004년 서울 득표율 3.5% 정도) 지분까지 챙긴 셈이다. 최대 승부처인 서울 등 수도권에선 불과 몇천 표차로 희비(喜悲)가 갈린다. 후보의 개인기를 무시할 수 없지만 선거 구도를 짜는 것은 선거 전략의 기본이다.
세대별 표심(票心)의 향배를 쥔 40대는 아직 새누리당에 가슴을 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 이어 작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더 뚜렷해진 40대의 반감이 이어지고 있다. 총선일이 한 자릿수로 좁혀졌지만 서울의 전통적인 새누리당 강세 지역에서도 분위기가 안 살아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말 새누리당이 서울지역 판세를 자체 분석한 결과 ‘백중우세’ ‘우세’ 지역은 전체 48곳 가운데 13곳(27%)에 그쳤다는 후문이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그 힘들었던 탄핵 때도 살아남았는데”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다간 낭패를 당할 것이다. 탄핵의 착시(錯視) 현상에서 벗어나야 길이 보일 수 있다. 작년 말 서울시장 선거 때 표심은 아직도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민간인 사찰 폭로 정국 속에서도 새누리당은 40대를 중심으로 한 ‘스윙 보터(swing voter)’의 마음을 잡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