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雲 감도는 테헤란을 가다
이란 테헤란 시내 바자르 시장에서 만난 파히멘 씨(45·여)는 ‘서방의 제재와 이스라엘의 공습 위협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제재로 인한 고통을 묻는 기자에게 “제재가 뭔가요”라고 묻는 시민도 있었다.
이란의 핵개발 의혹을 둘러싼 중동의 화약고가 점차 가열되고 있다. 서방은 이란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이고 이스라엘은 무력 공습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란은 공습을 당하면 세계 석유 운반선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맞선다. 전운(戰雲)이 고조되는 가운데 서방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이란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이란 곳곳을 동아일보가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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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는 취업을 걱정하는 대학생들이 전공 서적을 고르기 위해 서점을 찾았고, 조금 깊숙한 골목에는 서민들이 주식으로 먹는 큼지막한 빵인 ‘난’을 팔에 끼고 가는 한가로운 모습도 보였다. “쇼마 치니?(당신은 중국인입니까?)” 갓 들여온 과일을 진열하던 노점상 주인은 어설프게 히잡을 둘러쓴 기자를 보고 이렇게 물으며 오렌지 하나를 건넸다.
이처럼 평온한 겉모습 속에서도 이스라엘의 공습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면 일반 시민이나 지식인, 관료 모두 굳은 결의를 감추지 않았다. 이스라엘 고위층들이 “단독으로라도 이란을 선제공격하겠다”고 강경 발언을 잇달아 내놓는 데 대해 테헤란 시민들은 “이스라엘의 공격은 불가능하다. 공격을 해온다 해도 이란은 충분히 전쟁을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슬람 교육라디오방송국에서 일하는 알리 아스가르 바라티 씨(38)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맞붙는다면 그건 개미와 코끼리의 싸움이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물론 여기서 코끼리는 이란을 가리킨다. 엥겔라브 광장에서 만난 호세인 씨(63)는 “우리는 하메네이의 오랜 경험과 지혜를 믿고 따른다. 지도층이 잘 해결해 낼 것”이라며 강한 신뢰를 내비쳤다.
서방의 제재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현지 신문인 ‘이란뉴스’는 “이란에 대한 제재는 효과적이지 않다. 오히려 서방이 이란 제재로 고통 받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자문위원인 알리 아크바르 자반페크르 씨는 “이란을 움직이려면 제재를 가할 것이 아니라 이 정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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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란혁명과 이란-이라크전쟁 등 오랜 투쟁을 겪어온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층에선 이란의 ‘줄타기 외교정책’을 불안해하는 반응이 없지 않았다. 일자리 부족과 부패한 권력에 대한 분노와 회의가 정부의 대결정책 때문에 평화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대학 입시를 앞둔 니모 군(18)은 “사실 진짜로 전쟁이 날까 봐 겁이 난다”며 “전쟁이 터지면 우리는 모두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데 지금처럼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세관 직원인 시아막 씨(40)는 지난해부터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제재의 영향으로 세관 통관 물품이 감소해 일거리가 줄면서 수입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도 테헤란에서 4년제 대학을 나와 한때 정유시설 엔지니어로 일했으나 수년 전부터 ‘백수’가 됐다.
테헤란대 앞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바르브아일 씨(42)는 “핵 갈등을 외교적으로 풀어야지 무력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걱정했다.
현지 신문이 게재한 한 장의 만화는 핵개발 갈등으로 받은 제재 때문에 늘어나는 서민들의 고통과 대결 외교를 펴는 정부에 대한 비판, 하지만 왜 반미(反美)의식이 높아지는지 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미국이 발등을 밟자 이란 당국자는 “아야” 하고 가벼운 아픔을 나타내지만 이란 당국자의 구둣발 아래 눌린 서민들은 “우리가 무슨 죄냐”고 하소연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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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