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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박현진]애플과 중국의 폭스콘

입력 | 2012-03-05 03:00:00


박현진 뉴욕 특파원

미국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유명한 배우인 마이크 데이지는 ‘애플 광신도’였다. 하지만 2010년 우연히 본 중국 폭스콘 공장 근로자들의 사진은 애플에 대한 그의 믿음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아끼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중국 근로자의 땀과 눈물로 빚어졌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당장 짐을 꾸려 사업가로 위장해 폭스콘 공장을 찾았다. 거기서 그는 끝없는 야근과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잇달아 목숨을 끊은 근로자들의 얘기를 듣고 큰 충격에 빠진다.

그가 올해 초 오프브로드웨이의 퍼블릭시어터 무대에 다시 올린 ‘스티브 잡스의 괴로움과 황홀함’은 이 내용을 담은 1인극이다. 지금도 이를 보기 위해 관객들은 줄을 선다. 데이지의 고발은 중국 근로자의 열악한 근로 환경에 대해 미국 내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애플도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폭스콘이다. 근로자 120만 명을 저임금에 고용하면서 세계 전자업체 조립시장의 40% 가까이를 점유해온 이 회사는 최근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 18일 이 회사는 임금을 25% 인상하고 초과근무 시간을 단축하겠다는 수습책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애플 HP 델 등 고객사에 근로자 임금을 올려줘야 하니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글로벌 전자업체들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중국보다 낮은 생산비용으로 제품을 조립할 수 있는 또 다른 나라의 공장을 찾을 것이다. 지금 애플 등의 생산을 맡겠다는 해외 공장은 줄을 서 있다.

폭스콘의 사례에서 보듯 월가는 풍부한 노동력과 저임금으로 10년 넘게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의 성장모델이 한계에 직면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중국의 재야학자라고 밝힌 한 인사는 “월가는 거짓말쟁이이며 기생충”이라고 맹비난했다.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의 기자회견장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날 졸릭 총재는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센터와 공동 연구한 ‘2020년 중국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존의 국가 주도 발전모델로는 중국의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날 행사장에 난입한 재야 학자는 ‘세계은행, 미국으로 꺼져라’라는 유인물을 돌렸다. 개혁을 요구당하는 중국인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폭스콘에 닥친 도전과 세계은행이 겪은 두 사건을 지켜보면서 1998년 외환위기를 겪었던 한국을 떠올렸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액은 물론이고 미국과 함께 글로벌 경제를 주무르고 있는 중국을 한국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 발전과정을 보면 유사한 점이 많다. 한국은 고정환율제라는 국가가 쳐놓은 방어막 아래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 수출로 고도성장을 이어갔다. 외환위기가 터지기 몇 년 전부터 경제모델의 개혁을 요구하는 세계 석학의 지적에는 귀를 닫았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솥을 뚜껑으로 억지로 눌러온 것이다. 후유증은 컸다. 저임금과 함께 위안화를 미 달러에 고정해 놓고 싼 가격으로 세계에 제품을 내다판 것이 중국 고성장의 배경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1998년 한국의 경제위기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처방과 뼈아픈 구조조정으로 겨우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경착륙이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은 한국과 비교하기 어렵다. 고도성장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한 자긍심에 도취돼 불과 10년 뒤 다가올 위기를 보지 못한 우리의 전철을 중국은 밟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박현진 뉴욕 특파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