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경제부 기자
그는 같은 조사에서 2006년엔 1위, 2010년에도 5위를 했다. 그냥 어느 한 해 반짝 운이 좋았던 게 아니란 얘기다. 손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경제 예측을 그렇게 잘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보통 학자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지표만 갖고 경제를 분석합니다. 하지만 저는 수십 년간 쌓아온 네트워크를 통해 직접 정보를 얻습니다. 만약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이 요즘 어떤지 궁금하면 현지 기업인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답을 얻는 식이죠.” 책상머리에 앉아 들어오는 자료만 받기보다는 직접 발로 뛰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도움이 됐다는 노(老)교수의 얘기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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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미 진행 중인 위기도 제때 가려내지 못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전주곡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골디락스(저물가 속 호황)를 시기한 잠깐의 심술’로 보는 ‘전문가’가 많았다. 작년에는 유럽 재정위기로 국내 증시가 큰 조정을 받았지만 그해 초만 해도 “코스피가 2,500까지는 간다”는 전망이 대세였다. 실제 흐름을 보면서 “네 살짜리 내 조카가 당신들보다 더 잘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경제학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려는 생각은 없다. 사실 금융위기 이후 경제 예측은 경제학이 아닌 점술(占術)의 영역에 더 가까워졌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지구촌 경제도 가뜩이나 복잡한데 일본 쓰나미나 이란 핵사태 같은 정치사회적 사건들까지 동시에 감안하며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세계 경제의 ‘마에스트로’로 추앙받던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도 수십 년간 쌓아온 명성을 앗아간 거대한 폭풍을 예상하지 못했다.
중요한 예측에 잇달아 실패하면서 세상과 가장 밀접해야 할 경제학은 쓸모없는 학문 취급을 받는 처지에까지 몰렸다. 전에 없는 밥그릇 위기를 맞아 많은 학자가 존재의 이유를 자문하며 자신감을 잃었다. 미래에 관해선 아예 입을 다물거나 안전하게 다수(多數)의 의견을 따라 묻어가는 경향이 생겼다. 예전엔 정작 예측은 틀릴지언정 자기만의 길을 걷는 괴짜 학자라도 있었지만 이젠 그런 ‘돈키호테’를 보기도 쉽지 않다. 이른바 전문가들의 판에 박힌 코멘트를 듣다 보면 지면에 옮길 만한 가치가 있는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경제학은 정말 효용을 잃었을까. 이들의 말은 이제 귀담아들을 가치가 없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국민들은 전문가들의 분석과 처방에 더 의지한다. 더구나 요즘 한국에서는 기본적 경제원리와 인간성의 본질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각종 해괴한 주장이 난무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사명감과 실력을 함께 갖춘 경제학자들의 고언(苦言)이 더욱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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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경제부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