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학
우리나라의 경우 과학문화 활동이 정부 주도 사업으로 정착된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73년 유신헌법을 통과시킨 박정희 정권은 ‘전 국민의 산업전사화’ ‘전 국민의 기술자화’ ‘전 국토의 작업장화’를 내건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출범시켰다. 과학계는 이에 부응했고, 심지어 “과학으로 유신을 다짐한다”는 결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 과학화 운동을 추진하는 주체로 과학기술후원회를 개편해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을 설립했고, 진흥재단은 청소년을 위한 과학기술의 중요성 보급, 주부를 대상으로 한 과학강좌 사업, TV와 라디오를 이용한 과학프로그램 홍보 등을 담당했다. 이 진흥재단이 과학문화재단으로, 그리고 최근 과학창의재단으로 바뀌면서 맥을 이었다.
기후변화 시대엔 시민참여 중요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은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동시에 시들해졌지만 그 유산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과학문화 속에 남아 있다. 국민을 교육하겠다는 관 주도의 사업들, 전시성 행사를 위한 과학자와 국민의 동원, 과학의 확실성과 기술의 유용성을 전파해야 한다는 신념은 1970년대 과학화 운동의 유산이다. 학술적으로 볼 때 이런 정책은 시민이 결핍하고 있는 지식을 과학자가 채워 준다는 ‘결핍모형’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서구에서는 이런 결핍모형이 1세대 과학대중화 사업의 실패한 모델로 오래전에 폐기됐고, 이후 2세대 ‘대화모형’을 거쳐 지금은 3세대 ‘시민참여모형’을 시행 중이라는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과학의 확실성과 기술의 유용성만을 교육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담고 있는 현대 과학기술의 문제들, 특히 다양한 종류의 기술 위험에 취약하다. 시민들이 위험을 느끼는 방식이 전문가들이 위험을 계산하는 것과는 판이하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과학을 교육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고집할 경우 미국산 쇠고기, 유전자변형식품, 원자력 발전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과 거부를 이해하지 못한다. 숱한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기후변화 시대에 걸맞은 과학문화는 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참여를 확대하고, 교육과 동원이 아니라 대화와 참여에 근거하고, 과학을 통한 계몽보다는 불확실성을 담은 문제를 예비적으로 대처하는 시민참여의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최근 2013년부터 시행되는 3차 과학기술기본계획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과학문화도 중요한 항목으로 거론된다. 특히 과학문화에 과학 대중화와 홍보만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위한 과학기술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성찰적인 신규 정책을 강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는 바람직한데, 문제는 지금까지 과학문화 사업을 담당한 정부 산하 주체들이 이런 사업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조직은 자신들이 일을 해오던 루틴(routine)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과학문화나 대중화 사업을 해오던 주체는 아직도 1970년대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官주도 ‘동원 교육’서 벗어나야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