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시장 급성장 뒤엔… 2030세대 자기계발 붐 있었다
9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도시락 전문점 ‘본도시락’에서 점심시간을 앞둔 직장인들이 도시락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본도시락 제공
이곳의 매장 직원은 현장 주문을 처리하면서 전화 주문까지 받느라 양손이 부족해 보일 정도였다. 10m²(약 3평) 규모의 이 매장에서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1시 반까지 팔리는 도시락은 배달까지 포함해 약 250개다.
길 하나 건너편에는 외식전문점 ‘불고기브라더스’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가장 저렴한 메뉴로 1만2900원짜리 도시락을 판다. 이 매장 관계자는 “한화나 미래에셋 등 인근 대기업 직원들의 단체 도시락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대형 오피스상권인 이곳 종각역 주변에선 ‘벤또랑’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등이 선보이는 도시락 메뉴 역시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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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시간은 자기계발 시간
‘오늘은 어떤 도시락 드시겠어요^^.’
한 화장품 업체 마케팅팀 팀원들의 데스크톱 화면에는 매일 11시 45분마다 인턴사원이 보내는 인터넷 메시지가 떠오른다. 인턴이 픽업해 온 도시락을 받아든 직원들은 조용히 각자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영어회화 강의를 듣거나, 식사를 서둘러 마친 뒤 몰입 근무를 한다. 일부는 인근 헬스장을 찾는다. 이 회사 조윤희 과장(35)은 “집이 멀어 아침이나 저녁에 따로 영어학원을 다니기 힘들다 보니 이런 식으로 점심시간을 활용한다”며 “어떤 때는 고 3때 독서실 풍경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의 도시락 수요에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지난해 도시락 매출은 2010년 대비 123.1% 늘었다. 훼미리마트와 GS25 역시 각각 56.7%, 91.8%의 신장세를 보였다. 싸고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편의점의 도시락 메뉴는 흔히 1인 가구 증가, 불황에 맞춘 알뜰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도시락 메뉴의 주 고객층과 시간대, 잘 팔리는 메뉴 등의 소비 행태를 면밀히 살펴보면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기보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도시락을 찾는 직장인 수요가 도시락 시장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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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3’ 편의점 업체 가운데 지난해 도시락 매출 성장세가 가장 컸던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7월 업계 최초로 국과 도시락을 합친 프리미엄 메뉴를 선보인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자체 분석하고 있다. 이 업체의 지난해 상권별 도시락 매출 증가율 조사 결과 오피스가는 185.2%로 학원가(144.1%), 병원 지하철(97.1%), 주택가(91.1%)를 훨씬 웃돌았다.
2009년 8월 종각역 인근에 테스트 매장 1호점을 연 본도시락 역시 고급 도시락에 대한 수요를 깨닫고 고급화를 추진해 매출이 10배로 늘었다. 오픈 초기엔 편의점과 크게 다를 바 없는 4000원대 메뉴를 선보이다가 지난해 7월 매장 인테리어를 리뉴얼하고 고가 메뉴 군을 접목한 결과, 하루 매출이 30만 원대에서 300만 원대로 껑충 뛴 것. 현재 이 매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도시락은 6000원대 소불고기 도시락과 1만 원대 VIP 도시락이다.
본도시락을 운영하는 본아이에프의 이진영 홍보마케팅팀장은 “도시락은 흔히 알뜰형 소비자들이 즐겨 찾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며 “앞으로 프리미엄 도시락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판단해 이달부터 가맹사업도 시작했다”고 전했다.
2008년 도시락 메뉴를 처음 선보인 불고기브라더스의 지난해 도시락 매출은 전년 대비 40% 성장했다. CJ푸드빌이 선보이는 한식 브랜드 ‘비비고’에서도 특히 삼성 계열사들이 밀집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강남삼성타운매장과 금융 및 외국계 기업이 많은 광화문점에서 테이크아웃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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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송인광 기자 l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