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였습니다. 전공이 스페인어라서 멕시코로 단기 어학연수를 떠났습니다. 혼자서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이었죠. 전공이라고는 해도 갓 2학년이 됐던 때라 제대로 말을 하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출발 전 2주 동안은 공항에서 쓰는 용어, 가격을 흥정하는 표현, 학교에서 쓸 법한 단어 등을 집중적으로 외웠습니다.
어학연수 기간은 겨우 45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한 덕분에 적응은 빨랐습니다. 귀국할 때쯤에는 필요한 물건을 사고, 여행을 다닐 정도의 일상 회화가 가능했습니다. 외국어라는 게 그런 겁니다. 시작은 어렵지만 관심과 노력만 기울인다면 기초적인 수준은 금세 터득할 수 있죠. 물론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의사소통만 가능하다면 여행은 훨씬 풍요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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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계의 언어는 프로그램 언어입니다. ‘코드’라고도 불리죠. 현실 세계에 많은 언어가 있듯 디지털 세계에도 자바, C 같은 여러 언어가 있습니다. 뭘 배우든 관계없습니다. 가상 세계의 언어는 현실의 언어보다 훨씬 단순하고 예외가 거의 없는 데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배우면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익히기 쉬운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최근 미국에서는 독특한 벤처기업들이 뜨고 있습니다. 코드카데미, 블록, 트리하우스 같은 회사들입니다. 이런 회사들은 웹사이트를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접속하면 프로그램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교육을 합니다. 온라인 영어학원 같은 온라인 프로그래밍 학원인 셈이죠. 시키는 대로 프로그래밍을 따라하다 보면 어느새 아주 기초적인 문법과 용어가 손에 익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사업 모델이지만 이 회사들은 벌써 수십억 원씩 투자를 받았습니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이 곧 ‘프로그램 언어 붐’이 일어나리라 예상한 겁니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는 건 반드시 그 나라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대충이라도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배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언어는 도구일 뿐 목표가 아니니까요. 프로그램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전문 프로그래머가 될 게 아니라면 프로그래밍은 목표가 아니라 도구일 뿐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 도구를 아는 사람이 앞서 갈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무료로 진행되는 코드카데미(www.codecademy.com)의 문을 두드려 보시면 어떨까요?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