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지 국제부 기자
최근 재벌 2, 3세들의 베이커리·카페 등 골목사업 진출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자 호텔신라는 베이커리·카페 브랜드 ‘아티제’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다.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는 롯데와 신세계도 사업 철수 고민에 들어갔다. 청국장 순대까지 넘보던 다른 재벌들도 몸을 움츠리고 있다.
그러나 몇몇 대기업이 문어발의 몇 가닥을 잘라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 ‘한국: 재벌과의 빵 싸움’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정치인들이 문제의 본질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총선과 대선을 겨냥해 대기업 회장 딸들의 빵집 경영을 막는 건 단지 겉치레에 불과하다”며 “한국 정치인은 효과적이지 않은 약으로 재벌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빵에 집착하다 보니 더 심각한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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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문은 “재벌이 신생 업체의 우수한 인력을 동물원에 집어넣어 재능을 파괴한다”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말을 소개하면서 “안 원장같이 완벽한 정치 아웃사이더가 아시아 4위 경제 대국을 경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성 정치인들이 계속 케이크에만 집중하면 안 원장이 그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이 ‘불공정 경쟁 타파’를 강조하고 기업들이 ‘상생’을 외치며 호응해 베이커리 철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중소 자영업의 활로를 위한 구조적 개선과 사회 안전망을 제공해야 할 숙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FT의 지적처럼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빵 향기에만 취해 재벌 문제에 손놓고 있으면 안 되는 이유다.
강은지 국제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