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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글라이딩으로 횡단한 히말라야, 그 山은 우리에게…

입력 | 2012-01-28 03:00:00

삶의 고도를 높이라 하네




세계 최초의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원정대(대장 박정헌)가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마치고 26일 귀국했다. 지난해 8월 12일 한국을 떠난 지 168일 만이다. 홍필표 함영민 등 대원들의 머리와 수염은 길게 자랐다. 동행했던 본보 이훈구 기자도 함께 귀국했다. 박정헌 대장은 담석증으로 인해 21일 먼저 귀국했다.

대원들은 지난해 8월 22일 파키스탄 자니패스에서 첫 비행을 시작해 20일 인도 북부 조르당에서 비행을 마쳤다. 비행 횟수는 67회, 직선거리는 아니지만 비행거리는 총연장 3000여 km에 이른다. 1회 비행 중 최장거리는 107km, 최고도는 6119m였다. 비행에 적합한 지형을 찾아 차량으로 이동한 거리만도 7336km에 이른다.

그동안 히말라야의 일부 지역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시도한 탐험가는 몇 명 있었지만 히말라야 산맥을 횡단하며 패러글라이딩을 한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홍 대원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원정을 안전하게 마무리해서 기쁘다. 거의 매 순간 위험의 연속이었다. 히말라야의 변화무쌍한 기류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랐다. 정해진 착륙지가 없다는 점이 가장 위험했다. 거의 돌밭에 착륙하곤 했다”고 말했다. 착륙할 때 패러글라이딩의 하강 속도는 시속 20km에 달했다. 고지대인 히말라야 상공에서는 공기밀도가 낮아 패러글라이딩의 속도가 다른 곳에서보다 더 빨랐다는 것이 대원들의 설명이다. 대원들은 착륙 도중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홍 대원은 “하늘에 날아올랐을 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히말라야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함 대원은 “눈 위에서 이륙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지상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며 기류를 타야 하는데 발이 눈에 푹푹 빠졌기 때문에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함 대원은 “눈과 얼음을 깨서 밥해 먹던 순간이 벌써 그립다”며 “산골 주민들이 우리를 산타할아버지 대하듯 반겼다. 우리를 외계인처럼 바라보는 그들이 신기했다”고 했다. 그는 “불시착에 대비해 항상 2박 3일 치 식량을 갖고 비행했다.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게 경이로웠다”고 말했다.

박 대장은 “히말라야를 패러글라이딩으로 완벽하게 횡단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 원정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지금껏 많은 비행탐험대는 히말라야의 바깥쪽을 돌았지만 우리 팀은 롤왈링히말라야와 쿰부히말라야 등 히말라야의 깊숙한 곳에 들어가 힘겹고 위험한 등반을 하고 비행을 했다. 어느 누구도 안 해 본 도전을 했다는 게 의미 있다”고 했다. 그는 “원정대장 일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밤잠을 설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2005년 촐라체에서 조난당한 뒤 손가락 발가락을 절단했던 후유증으로 몸이 많이 아팠지만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산악인 시절 원정보다 훨씬 힘들었다. 나를 포함한 대원 모두가 이번 경험을 통해 인생의 열기류를 타고 날아올라 삶의 고도를 높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마치고 귀국한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원정대원들. 왼쪽부터 본보 이훈구 기자, 함영민 홍필표 김민수 대원. 인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산악인 엄홍길 씨는 “그동안 히말라야에서의 산악활동은 등반 위주로 이루어졌다. 한국인이 패러글라이딩으로 산악활동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이 의미 있다. 2005년 사고를 딛고 일어선 박 대장이 패러글라이더로 새 인생을 개척한 것은 위대한 도전이었다. 후배지만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이번 원정대의 활약상은 3월부터 KBS 다큐멘터리(담당PD 김형운)로도 방영될 예정이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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