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음악과 음악,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의 경계들이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사람들끼리 즐거운 마음과 웃음 머금은 눈길을 주고받던 마술 같은 이 음악시간은 한-쿠바의 문화교류 사업으로 기획된 ‘쿠바 노마딕 프로젝트-여름에서 겨울로’였다. 다소 길고 생소한 이 공연은 양국 음악가들이 모여 서로 어울려 보는 ‘특별한 음악 만남’의 자리였다.
비수교 국가와의 ‘외교 음악회’
2부 순서는 더 흥미진진했다. 재즈를 연주하는 쿠바의 4인조 그룹이 허윤정 등의 한국 전통 음악계의 대표주자들과 어울려 만들어낸 교감의 무대였다. 거문고 해금 타악기 노래가 어울린 산조, 판소리, 정선아리랑 가락이 쿠바의 자장가, 민요와 만났다. ‘탐색’과 ‘대화’, ‘공감’의 단계를 거쳐 서서히 절정으로 치닫는 절묘한 악흥(樂興)은 아름다운 소통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절정의 순간이 지나고 판소리 부르는 이자람과 타악주자 둘이 대학생 같은 차림으로 먼저 무대에 나와 자리를 잡았다. 무대 의상치고는 좀 ‘소탈하다’ 싶었는데 뒤이어 등장하는 쿠바 뮤지션의 옷차림에 그만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색색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천진한 악동 표정으로 입장한 이들은 판소리 ‘심청가’를 함께했다. 심청이 죽음의 바다로 향하며 부르는 느리고 슬픈 대목에서는 구슬픈 쿠바의 선율로 응대하고, 뺑덕어미의 악행을 읊조리는 빠른 대목에서는 아예 “밥 잘 먹고 떡 잘 먹고 고기 잘 먹고 술 잘 먹고/양식 주고 술 사먹기∼.” 우리말로 제창하며 너나없이 흔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한-쿠바 음악교류 프로젝트’는 사실 비수교국과 음악으로 친해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외교통상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선한 ‘외교음악회’로 자칫 관 주도의 ‘비호감 공연’으로 분류될 우려가 높았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 성공의 비밀은 ‘서로에게 다가서기’에 있었다고 본다. 외교 성격을 띤 지금까지의 공연에서는 우리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것을 우리가 봐주는 일방적인 계획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쿠바 노마딕’의 핵심은 서로에게 다가서면서 알아가는 ‘쌍방향 소통’이었다. ‘내’가 소리를 내면 ‘그대’가 듣고, ‘그대’가 소리를 내면 ‘내’가 들어 서로의 ‘울림’을 낳고, 내가 거기에 소리를 덧대어 아름다운 어울림을 만들어내는 시간의 힘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서로를 알아가는 ‘특별한 어울림’
다른 문화와의 관계가 더없이 소중해지는 시대, 서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대상과 친해지는 방법을 고민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이 같은 ‘예술로(路)’를 확장하라고 권하고 싶다. 쿠바 노마딕 같은 기획이 더 자주, 더 세련된 방법으로 지속돼 우리나라가 21세기 세계 문화 속에서 조용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
송혜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