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활성화 대책 시장 시큰둥외상은 ‘신용’ 현금대체는 ‘체크’… 소비자 인식부터 달라져야
○ 외환위기가 신용카드 성장 계기
1997년 말 한국 경제를 뒤흔든 외환위기는 신용카드 업계에 때 아닌 특수를 가져다줬다. 당시 정부는 침체된 민간소비를 끌어올리면서도 국가 재정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신용카드를 해결 수단으로 빼들었다.
금융당국은 한발 더 나아가 당초 70만 원까지로 제한됐던 현금서비스 한도를 1999년 아예 없앴고 카드 사용을 늘리기 위해 소득공제 혜택과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 제도까지 도입했다. 이 덕분에 신용카드 이용액은 1997년 72조 원에서 2002년 623조 원으로 9배 가까이로 폭증하다시피 했다. 소비자들이 현금서비스 등으로 현금을 확보해 지출을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자 내수가 살아났고 정부는 자영업자의 매출이 투명해진 덕분에 세금을 더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정부가 당초 노렸던 일석이조가 달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보우 단국대 신용카드학과 교수는 “정부도 내수 진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신용카드를 선택한 것”이라며 “만약 직불카드를 고집했다면 정부가 원한 성과는 물론이고 카드시장도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신용카드 시장의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분별한 카드 발급과 카드 돌려막기로 2003년 카드대란이 터졌다. 그제야 정부는 신용카드를 대체할 체크카드를 내놓았다. 체크카드는 원래 법적 명칭이 아니라 비자카드의 직불카드 상품인 ‘비자 체크카드’에서 따온 용어. 별도 은행망을 이용하는 직불카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존 신용카드망을 이용하는 직불카드였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당시 급격히 늘어난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를 위해 만들어진 체크카드가 마치 해결사처럼 대접받고, 신용카드가 역적이 돼버린 현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 체크카드 활성화는 미지수
2004년 이후 정부가 신용카드 관련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체크카드 활성화를 외쳤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최근 가계부채와 가맹점 수수료율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자 정부는 다시 체크카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전문가들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체크카드를 적극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소득공제 혜택을 늘리는 것만으로 체크카드 활성화가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궁극적으로 소비자가 신용카드의 신용거래 기능과 결제 편의성을 따로 떼어내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용카드는 말 그대로 신용거래(외상)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그 외에 일시불 등 현금 대체수단으로의 결제 편의를 위해서는 체크카드를 이용하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용카드는 금융비용이 많이 드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일반 거래에선 체크카드를 이용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