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조언에 따라 선왕 定公의 상례를 마친 등나라 세자는 즉위한 후 禮를 갖추어 맹자를 초빙했다. 그 왕이 곧 文公이다. 맹자가 이르러 오자, 등나라 문공은 정치강령에 대해 물었다. 맹자는 우선 ‘시경’ 빈풍 ‘七月’편을 인용해 農政(농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백성들의 生業(생업)을 안정시키는 것이 정치의 가장 근본임을 역설하기 위해 일반 백성은 떳떳이 살아갈 수 있는 生業을 지녀야만 사람이 누구나 지닌 善心(선심)을 발현하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民之爲道也는 ‘백성의 살아가는 방법으로 말하면’이란 뜻을 나타낸다. 여기서의 道는 생활방식을 뜻한다.
이에 앞서 맹자는 제나라 선왕의 자문에 응하여 發政施仁(발정시인·정치를 펴서 어진 정책을 시행함)의 방법을 力說(역설)할 때, ‘無恒産而有恒心者(무항산이유항심자)는 惟士爲能(유사위능)이어니와 若民則無恒産(약민즉무항산)이면 因無恒心(인무항심)이니라’라고 했다. 맹자는 선비와 백성의 경우를 구별하여 ‘떳떳이 살아갈 수 있는 생업이 없으면서도 떳떳한 마음을 지니는 것은 오로지 선비만이 능히 할 수 있다’라고 하고, ‘백성으로 말하면 떳떳이 살아갈 수 있는 생업이 없으면 그로 인하여 떳떳한 마음이 없게 된다’라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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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