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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홍성철]수행평가를 또 확대한다고?

입력 | 2011-12-16 03:00:00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정부가 13일 내놓은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 방안의 핵심은 중고교 내신 평가방식을 절대평가로 다시 바꾼다는 것이다. 지나친 성적 경쟁에 따른 학생들의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다.

목적은 좋지만 효과를 거두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내신 성적 부풀리기의 재연, 대학별고사 과열, 고교 서열 고착화 등이 그것이다. 이런 내용은 이미 언론에서 지적했으므로 더 거론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하나 더 있다. 수행평가를 확대하겠다는 부분이다. 이 제도는 그동안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고행(苦行)평가’라는 오명을 들어 왔다. 학부모라면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자녀의 과제물을 함께 준비한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가끔은 불쑥 짜증이 치밀어 아이 머리를 쥐어박아 가면서…. 이 경우 십중팔구는 수행평가 때문으로 보면 맞다.

대부분 그렇듯 이 제도 역시 취지는 나무랄 데 없다. ‘지필고사 위주의 점수 경쟁을 억제해 사교육을 줄이고, 과정 중심의 질적 평가를 내실화’한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이 있겠나.

문제는 우리 교육의 척박한 토양에 이 제도를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데 있다. 학부모 최모 씨는 지난 학기에 아들의 수행평가 과제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집단따돌림을 주제로 손수제작물(UCC)을 만드는 일은 중1 학생이 혼자 할 수 있는 과제는 아니었다. 아들과 함께 꼬박 이틀을 새벽 서너 시까지 매달려서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성적과 직결되다 보니 부모가 신경 안 쓰기 어렵다. 그래서 ‘엄마평가’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었다. 자녀교육에 시간과 비용을 많이 쏟기 어려운 맞벌이나 저소득층 부모는 마음의 짐이 하나 더 늘게 된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직전에 평가가 몰리는 일이 많아 학생들도 아우성이다. 안 그래도 시험 준비에 시달리던 학생들의 스트레스도 배가 된다. 수행평가를 팀별로 준비하면서 친구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도 흔하다. 대체로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의 불성실에,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에 불만을 토로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행평가가 많은 학교는 학부모 사이에 인기가 없다. 상대적으로 교육당국의 지시를 더 잘 따를 수밖에 없는 공립학교가 기피 대상이다.

수행평가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올해 1학기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그동안 전체 성적의 10%가량 반영되던 수행평가 배점을 30%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시교육청은 중고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토대로 이를 철회했다.

당시 곽 교육감은 “학생들에게 수행평가가 더는 고행평가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뒤 학교 실정에 맞춰 자율로 결정하도록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개선하기로 한 정책이 설명 한 마디 없이 정부 정책에 다시 등장한다면 학생과 학부모가 납득할 수 있을까.

책상에 앉아 머리로만 정책을 만들면 보기에는 그럴 듯해도 오래가진 못한다. 공무원들은 현장에 나가 교육수요자들의 의견을 듣고 실상을 살펴본 뒤 정책을 세워야 한다. 가뜩이나 살인적인 학습 부담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마음이 정말 있다면 말이다.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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