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논설위원
한나라당만이 아니라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민세력은 이 정당들이 만들어준 우리에 갇혀 사는 집토끼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박원순과 참여연대로 대표되는 좌파 시민세력이 민주당과 손을 잡고 정치권 진입에 성공했다. 시민세력이 중심이 되는 정당의 재구성이 시작된 것이다.
한나라당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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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내부의 찻잔 속 폭풍은 그들만의 리그에서의 권력투쟁에 불과하다. 한나라당 밖에서 시작되는 움직임만이 진정한 보수의 재구성에 기여할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없지는 않다. 보수 시민세력을 자처하는 박세일이 신당 창당을 모색하고 있다. 박원순 모델과는 다른 것이지만 시민세력에 기반을 둔 정당을 추구한다는 점은 비슷하다. 자칫 박세일 신당이 보수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지금 보수에 필요한 것은 자진해서 카오스(chaos·혼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고 그 속에서 무엇인가 새롭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나도록 지켜보는 것이다. 박근혜가 먼저 자기만이 보수의 대권주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대권경쟁의 장(場)에서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진보 진영만큼 인물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가 사라진 장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진가를 발휘할 수도 있다.
이 시대는 근엄함보다 발랄함을 좋아한다. 20여 년 전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회색 정장을 착용한 정치인들 사이에서 청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며 미국식 어휘를 구사해 신선함을 줬다. 영국 보수당이 블레어를 벤치마킹해 만들어낸 것이 30대 젊은 당수 데이비드 캐머런이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는 순발력과 촌철살인의 말솜씨를 필요로 한다. 보수에서도 시대를 따라잡는 발랄한 지도자들이 나와야 한다.
좌파 베끼기에 그쳐선 성공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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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든 박세일이든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베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수에는 지켜야 할 보수의 가치가 있다. 같은 돈을 들인다면 복지보다는 고용이다. 복지란 정부 돈을 민간부문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도 역시 정부 돈을 민간부문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일자리는 복지와 달리 개인의 자긍심을 높여준다. 그렇다면 단순한 복지의 확대보다는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이 효과적이다. 블레어조차도 이미 20여 년 전에 ‘복지에서 고용(Welfare to Work)으로’의 구호를 내걸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