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시장-생활경제 변화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진 것은 육류시장만이 아니었다. 구제역으로 젖소 수가 줄어들어 예상치 못했던 원유대란이 일어나면서 원유 값 상승과 함께 대체재인 두유 판매 증가라는 ‘풍선효과’를 낳기도 했다. 구제역 발생 1년을 맞아 구제역이 우리 생활경제에 가져온 영향과 의미를 분석해봤다.
○ 한우의 추락, 돼지의 질주
구제역 발생 후 국내 축산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두 가지 변화는 ‘한우 값 급락’과 ‘돼지고기 값 급등’이었다. 지난해 평균 3만5000∼3만8000원 선에 거래됐던 한우(갈비 500g·1등급 소매가 기준)는 구제역 발생과 동시에 계속 값이 떨어져 11월 평균 2만1800원 선(23일까지)에 거래된다. 반면 지난해 7000∼8000원대에 거래됐던 돼지고기(삼겹살 500g·중품 기준) 값은 구제역 이후 값이 급등해 올여름에는 한때 최고 1만700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소와 돼지 모두 ‘구제역으로 인한 도살처분’을 겪고도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어떻게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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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올 초 구제역이 터지면서 상당 기간 가축의 이동 및 도축이 제한됐던 게 한우시장에 직격탄이 됐다. 다 키워 놓고도 시장에 내놓을 수 없었던 소들이 4월 3일 ‘이동 및 도축 제한 해제’ 조치 후 한꺼번에 시장에 몰리면서 한우 값 급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소비자는 “차라리 (질병에 노출된) 한우보다 외국산이 안심된다”며 한우보다 절반 이상 싼 수입 쇠고기를 선택하기도 했다. 정부와 축산업계는 ‘군대 급식에 한우고기 사용’ ‘반값 한우 폭탄세일’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과 관계자는 “구제역 도살처분에도 올해 한우 사육 규모는 사상 최대 수준이었다”며 “앞으로 적어도 1∼2년은 한우값 하락세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반면 한우보다 20배나 많은 331만8000마리의 돼지가 도살처분된 돼지고기 시장은 올해 내내 극심한 공급 부족에 시달렸다. 특히 새끼돼지를 낳는 데 필요한 종돈(種豚·씨돼지)과 모돈(母豚·어미돼지)이 약 33만 마리나 도살처분되면서 돼지농가들은 재기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 수입 고기 전성시대
구제역 발생 후 돼지고기가 서민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떠오르자 정부는 수입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율을 일시적으로 제로(0%)로 만드는 할당관세 적용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이에 따라 수입물량은 급증했다. 10월 말까지 올해 한국의 돼지고기 수입량은 32만2062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수입량(14만8403t)보다 2배(117% 증가)로 늘었다. 수입 쇠고기 역시 지난해 10월 말까지 20만3381t이 들어왔지만 올해는 같은 기간 4만 t가량 늘어난 24만4626t이 들어왔다.
○ 주목받는 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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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농농가들은 7월 “구제역으로 900여 젖소 농가가 폐업하고 젖소 수마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이대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며 원유값 인상을 주장하고 나섰다. 낙농농가들이 원유 공급 중단 투쟁까지 벌인 결과 우유가격은 지난달 소매점 기준으로 9.5% 올랐다.
우유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나타난 현상 가운데 하나는 소비자들과 식품업계가 우유의 대안으로 ‘두유’를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크라운베이커리, 뚜레쥬르, 투썸플레이스 등 제빵·커피업계는 최근 속속 우유 대신 두유를 넣은 메뉴를 개발해 선보였다. ‘베지밀’을 만들어 파는 정식품 측은 “올해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2%나 늘었다”며 “지난해 3300억 원 규모였던 두유 시장이 올해는 4000억 원 시장으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마트에서는 10월 두유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1% 급증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우병준 축산관측팀장은 “이번 구제역을 겪은 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마을별로 축산업을 까다롭게 제한하는 조례가 생긴 데다 동네 사람들이 침출수 등 환경문제가 생길까봐 축산농가들을 기피하는 현상마저 생겨 국내 축산업계가 구제역 발생 이전 규모로 돌아가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