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수석논설위원
‘부유층 위한 사업’ 비난은 근시안
한강예술섬 사업은 한강대교 중간에 있는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 등 복합문화시설을 건립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2년 서울시장에 취임한 이후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97년 조순 서울시장 시절부터 노들섬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조 시장은 이곳을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처럼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예술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을 세웠다. 2005년 이명박 시장은 이곳에 오페라 전용 극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호주의 문화적 상징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모델로 한 계획이었다. 이 시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오페라극장 이외에 다른 문화예술 시설까지 포함하는 사업으로 바꿨다. 한강예술섬이라는 말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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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소외계층에 공연장 좌석의 일정 비율을 할당해 저렴한 가격으로 혹은 무료로 입장하게 한다면 오히려 이들의 문화 향수 기회를 넓힐 수 있다. 부자들을 위한 사업이라며 발목을 잡는 것은 근시안적이고 편협한 발상이다.
박 시장 측은 한술 더 떠 한강예술섬을 ‘전시성 토건 사업’으로 분류했다. 참으로 거칠고 비문화적인 접근 방식에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렇게 개념 없이 나설 수는 없다. 이 점에서 한강예술섬 백지화는 전임 시장의 사업을 재조정하는 차원을 떠나 서울시가 앞으로 어떤 형태의 복지를 추구해 나가느냐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박 시장이 내세운 ‘복지 서울’이 오 전 시장이 강조했던 ‘문화 서울’과 자리를 맞바꾼 형국이다.
문화와 복지 같이 가야
그러나 문화와 복지는 따로 가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먹는 것을 해결해 주는 복지는 세계적으로 설득력을 잃고 있다. 소외계층도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문화 복지’가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어릴 때 받은 문화적 혜택이 평생 중요한 개인적 자산으로 활용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문화적 자본’이란 용어를 만들어 냈다. 문화적 자본이 크게 부족할 수밖에 없는 소외계층 자녀에게 문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문화 복지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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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예술섬 백지화는 후진적인 ‘문화 없는 복지’를 암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강예술섬 같은 문화 인프라가 늘어나야 저소득층의 문화 혜택도 확대될 수 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서 저소득층의 연간 문화예술 행사 관람 횟수는 1회가 채 되지 않았다. 박 시장이 속해 있는 이른바 진보좌파 진영에는 대중적 영향력이 큰 소설가 화가 등 문화계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전후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이들이 한강예술섬 백지화에 반대 목소리를 낼 법도 한데 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지 납득할 수 없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