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SW개발자의 요람’ 삼성소프트웨어멤버십 20돌
1991년 군 제대를 앞둔 배인식 병장은 친한 선배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분야 인재를 키우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달라는 전화였다. 그는 선배에게 말했다. “각 대학 컴퓨터 동아리마다 숨어 있는 괴짜들이 많으니 내가 모아 볼게.” 배 씨는 입대 전에 전국대학컴퓨터서클연합(유니코사) 회장이었다.
3일 뒤 다시 전화가 왔다. 학점도, 대학 이름도 상관없이 컴퓨터 실력을 갖춘 대학생 100여 명을 뽑고, 자기가 원하는 작업에 열중할 수 있는 일종의 ‘놀이터’를 만들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초스피드 의사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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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고수끼리 만나면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의 창업자들 중에는 유독 86학번이 많다. 배 대표뿐 아니라 넥슨의 김정주 회장, NHN을 창업한 이해진 의장, 카카오톡 김범수 의장이 86학번이다. 이들은 유니코사, 서울대 컴퓨터 동아리, KAIST 대학원 등에서 일찍부터 알던 사이다. 애플Ⅱ 복제 컴퓨터를 접하고, 대학 동아리에서 ‘고수’들끼리 만나 컴퓨터의 세계에 눈을 뜬 첫 세대인 셈이다. 기업도, 대학도 하지 못한 것을 대학생들이 서로 배워가며 시장을 열기 시작했다.
이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시너지 효과가 났다. 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이들이 서로에게 배우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8년 멤버십에 들어갔던 김정학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팀 책임은 “다른 대학 친구들과 만나 아이디어를 내고,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제품으로 개발해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자극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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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 입사한 이들은 주로 소프트웨어 업무를 맡았다. 김 책임은 2000년 입사한 뒤 11년 동안 무선플랫폼만 연구해 왔다. 바다 운영체제(OS)를 만든 주역 중 하나다.
○ “계란으로 바위 칠 수 있는 게 SW”
미국 HP와 애플은 모두 미국 캘리포니아 주택단지의 ‘차고’에서 시작됐다. 유능한 개발자들의 열정이 세계적인 IT 기업을 만들어낸 것이다. 각 대학의 동아리와 멤버십도 실리콘밸리의 ‘차고’ 문화를 꿈꿨지만 한국을 글로벌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만들지 못했다. PC시대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모바일시대에는 애플과 구글을 따라가느라 바쁜 상황이다.
배 대표는 “천재급 인재가 많아도 시장이 있어야 물건을 만들고, 또 인재가 몰린다”며 “한국의 온라인게임은 글로벌 강자가 됐지만 나머지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시장 자체가 생기질 못했다. 한 대기업이 곰플레이어 소스코드까지 달라고 하면서 5000만 원을 제시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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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