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보증은 만년 보증… ‘좀비 기업’ 대출 연명
시장에서 자생력을 상실한 기업들이 보증과 대출로 연명하면서 유망 중소기업이나 예비 창업자들이 금융을 제때 수혈받지 못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사업성이 있어도 보증이나 대출을 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기업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영업이익으로 은행 대출이자도 갚지 못하는 ‘좀비 기업’들이 국가기관의 장기보증으로 숨통을 이어가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은행과 신용보증기관의 사실상 묵인 아래 수십 년 동안 관행처럼 이어진 잘못된 중소기업 대출 행태를 뜯어고치겠다고 소매를 걷어붙인 것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다.
○ 뒷돈 챙기고 미자격 업체에 보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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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신보와 기술보증기금 등 보증회사들은 신기술을 개발했거나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을 하려는 이들에게는 인색하고 수년간 보증을 받아온 업체들에는 지나치게 너그럽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신보로부터 10년 넘게 보증을 받아온 장기보증 업체가 9월 말 현재 6093개 업체에 이르며 보증액 규모는 5조457억 원에 이른다. 보증을 해주던 기업들에 기계적으로 보증을 제공하는 사례가 많다는 뜻이다. 전체 보증업체 중에서 장기보증 업체 비율이 신보보다 더 많은 기보는 동아일보의 통계 제공 요청을 거부했다.
이처럼 안이한 보증 시스템이 지속되면서 보증회사 직원들이 자격조건을 갖추지 못한 업체들에 보증을 제공하고 뒷돈을 받아 챙기는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까지 벌어지고 있다. 기보의 간부직원 2명은 2007년 12월 자격이 안 되는 Y사에 대출한도 5억 원의 보증서를 발급해주고 액면가 2000만 원 상당의 이 회사 주식 4만 주를 각각 받았다가 지난해 검찰에 구속됐다.
○ 뛰어난 기술 산업화 이끌어줘야
은행들은 사업성이 있는 신생기업을 개발해 자금을 지원해주고 성장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자금중개 기관의 역할은 포기한 채 보증이나 담보가 있는 기업에만 대출을 해준 지 오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9월 한 달간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은 1조7000억 원 늘었다. 이 기간에 신보가 중소기업에 제공한 신규보증 규모가 9871억 원에 이른다.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이 대부분 신보와 기보의 보증을 받아 이뤄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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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중소기업 지원시스템은 보증의 선순환을 막는다. 생존능력이 없는 기업은 퇴출시킨 뒤 새로운 기업에 정책자금을 지원해 일자리를 만들고 나라 경제를 살찌우게 해야 하는데, 현재의 보증시스템으로는 이런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중소기업 돈줄에 대한 대수술에 나선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중소기업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금의 중소기업 자금지원 시스템은 한계기업을 정상기업인 것처럼 잘못 인식하게 만들어주는 구조”라며 “좋은 기술을 보유하고도 초기 실적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증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국가경제 전체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뛰어난 기술이 산업화되도록 해야 중소기업도 성장하고, 새로운 성장동력도 생긴다”고 덧붙였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