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정부가 국제사회의 2차 구제금융 지원안에 대한 국민투표 방침을 철회한 가운데 투표 파동을 일으킨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사진)가 명예 퇴진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파판드레우 총리는 3일 내각 2인자인 에방겔로스 베니젤로스 재무장관 등 각료들과 만나 5일 0시(한국 시간 5일 오전 8시)경 있을 내각 신임투표에서 찬성해주면 신민당과의 연정 협상을 마치고 사퇴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만남에서 파판드레우 총리는 “구제안의 국민투표 회부는 잘못이었다”고 말했고, 베니젤로스 장관 등은 “총리 개인과 사회당을 위해 명예롭게 퇴진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파판드레우 총리는 “제1야당인 신민당이 2차 구제안에 동의한다면 국민투표는 필요 없다. 야당의 구제안 지지를 환영한다”며 새로운 연립정부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지금 같은 중대한 시기에 권력 공백이 있어선 안 되기 때문에 정부가 사퇴하는 건 무책임하다”며 조기총선을 거부했다.
광고 로드중
당분간 계속될 그리스 정국의 소용돌이에도 불구하고 2차 구제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철회됨에 따라 내각 신임투표 및 연정 협상 결과에 상관없이 1차 구제금융의 6차 지원분 80억 유로는 예정대로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도 사라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유럽연합 수뇌부는 “그리스는 유로존 잔류 여부를 명확히 하라”며 6차분 구제금융 지원을 보류했다.
유럽 언론들은 조기 총선에 대한 여야의 견해차는 존재하지만 지도력을 상실한 파판드레우의 사퇴는 시기만 남았다고 전망했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2004년, 2007년 이어 2009년 10월 세 번째로 당을 이끌고 총선에서 승리해 조부와 부친에 이어 3대째 총리직에 올랐다. 그리스 정치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았던 정치 명문가의 후예인 그는 스웨덴, 영국에서 공부한 뒤 그리스가 군정에서 민정으로 복귀한 1972년 입국해 1981년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총리에 오르며 장담했던 부패 척결을 위한 개혁은 실패했고 재정적자 축소보다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면서 밀어붙인 경제 정책은 국가 전체에 암운을 드리웠다. 결국 그리스를 구제금융을 받는 첫 번째 유로존 국가로 만든 그는 2차 구제금융안의 국민투표 파동까지 일으키며 그리스를 유럽에서 가장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시켰다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