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요즘 그 월스트리트가 시위로 시끄럽다. 9월 중순부터 시작된 젊은이들의 시위는 들불처럼 번져나가며 좀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위에 나선 젊은이들은 지금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전적으로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에게 있으며 ‘금융의 공공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당초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해결됐지만 금융인들은 여전히 고액의 성과급을 받으며 공적 역할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의 위기는 구제금융을 통해 납세자에게 전가되는 반면에 이익은 금융인들에게 귀속되는 이른바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공유화’에 대한 집단적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월스트리트를 가로지르던 벽은 300여 년 전에 벌써 사라지고 없지만 더 강고하고 거대한 보이지 않는 벽이 여전히 우리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형국이다.
월가의 시위를 계기로 우리 금융기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 은행들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에 힘입어 정상화된 바 있다. 또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정부가 별도의 구조조정기금을 조성해 어려움에 처한 은행들을 지원했다. 이렇게 위기 때마다 정부의 지원으로 살아남은 금융기관들이 매년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있지만 정부 지원에 부응하는 공적 역할은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의견이 많다.
은행은 주주가 주인인 주식회사지만 수행하는 업무는 공적 영역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은행들은 주주나 임직원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앞서 우리 경제 전반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지원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은행의 공적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경기 순응성 문제를 들고 싶다. 은행들은 경기가 호황일 때는 대출을 대폭 확대하다가도 경기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과도하게 축소함으로써 경기 변동성을 부추기고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 전체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있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은행의 갑작스러운 대출 축소로 많은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의 상당 부분을 보증기관의 신용보증부 대출에 의존함으로써 은행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중소기업 지원이나 과도한 경기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금 등 금융공기업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우리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공기업의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경기가 어려울 때 금융기관들이 제 역할을 해 주어야 기업들도 어려움을 딛고 생존할 수 있고 우리 경제도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금융기관에 대한 우려를 계기로 우리 은행들이 공적 역할에 좀 더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