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미오와 줄리엣 ★★★★☆
로미오(이동훈·왼쪽)의 죽음 앞에서 절규하는 줄리엣(김주원)과 로렌스 신부(이영철). 국립발레단 제공
지난달 27∼3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공연 전 이미 관객의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렸다. 주말 공연은 매진이었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 탁월한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작품을 국립발레단이 9년 만에 무대에 올리는 데다 정명훈 씨가 국내에선 처음 발레 지휘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이런 관객의 높은 기대치를 꽉꽉 채워줬다.
오랜 앙숙인 두 가문의 남녀가 사랑에 빠져 비극적 파국에 이른다는 셰익스피어의 이 고전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무대화된 작품 중 하나지만 여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변주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여러 개의 패널로 꾸민 간결한 무대는 관객이 무용수들에게 집중하게 하면서도 사유의 여지가 넓은 추상적 조형물처럼 음악과 조명, 소품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점이 절묘했다. 아름답지만 강약(强弱)이 뚜렷해 까다로운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에 맞춰 새로운 해석을 입힌 안무 역시 감탄을 자아냈다.
국립발레단 간판 무용수 김지영과 김주원은 이 작품에서 번갈아 줄리엣으로 무대에 서며 ‘톡톡 튀는 발랄한 줄리엣’(김주원)과 ‘우아하고 성숙한 줄리엣’(김지영)의 서로 다른 빛깔을 뽐냈다. 이동훈의 로미오가 젊고 혈기 넘치는 청년을 잘 묘사했다면 몬테카를로발레단의 주역무용수 아시에르 우리아게레카의 로미오는 감정 표현이 한층 섬세하다는 느낌을 줬다.
이 작품에선 로미오와 줄리엣을 돕지만 비극적 결말의 원인을 제공하는 로렌스 신부의 비중이 크다. 그는 비극적 파국을 내다보는 예지력의 소유자지만 이를 바꾸지 못해 괴로워하는 또 한 명의 비극적 인물로 그려진다. 로렌스 신부 역을 맡은 이영철은 예정된 운명을 바꾸기 위한 갖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뒤 내면적 고통을 아름답고 처절한 독무로 담아냈다. 로렌스 신부의 극 중 비중이 너무 큰 대신 상대적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싹트는 과정이 많이 생략돼 극적인 완결구조가 부족하게 느껴진 점은 아쉬웠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