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은 없다지만 유난히 아픈 손가락은 있게 마련이다. 내 경우에는 각 팀의 노장선수들이 그러한데 이유는 몇 해 전, 아버지와 야구에 얽힌 추억 덕분이다.
아버지는 5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셨다. 남들 다 겪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건만 그 상실감과 자괴감은 상상 이상이었던지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떨어지고 우울해하셨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직 기량이 왕성한데 이제는 사회가 더 이상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리도 괴로우셨던 듯 하다. 흰머리가 늘어가고 목소리까지 변해가는 아버지는 내게도 충격이었지만 정작 해드릴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좋아하시는 야구를 봐드리는 것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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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함께 본 야구가 내게는 그깟 공놀이였지만, 아버지에게는 인생이자 힘이고 용기였다는 사실을 안 건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며칠 후였다.
소주를 기울이며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우리 팀의 나이 많은 선수들을 보며 힘이 난다고. 야구선수로는 환갑도 더 지난 송진우가 보란 듯이 200승을 거두고, 30대 후반인 구대성이 상대팀 젊은 투수들에 맞서 당당하게 싸우는 걸 보면, 나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고…. 순간 울컥하며 눈시울이 뜨거웠다.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도 모르고, 이 팀은 너무 나이가 많다고 불평했던 내 철없음이 부끄럽고 죄송했다.
얼마 후 아버지는 모 공사에 재취업을 하셨다. KTX를 타고 출퇴근하셔야 하는 불편을 내가 염려하자 걸어서라도 갈 수 있다며 웃으셨고, 젊은 직원들과 어울리는데 야구만큼 좋은 화제가 없더라며 즐거워하신다.
아버지에게 힘을 준 전설들이 은퇴할 때 한걸음에 달려와 박수를 치셨고, 지금도 나이 많은 선수들이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일 때면, 쥐도 늙은 쥐가 더 현명한 법이라고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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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노장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구율화 여성 열혈 야구팬·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