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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그 집만이 아니었다… ‘돌아온 大盜’에 부촌 뒤숭숭

입력 | 2011-10-12 03:00:00


지난달 27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75) 자택에서 귀금속과 현금 7000만 원어치가 절도당한 데 이어 일대 고급 주택가에서도 지난달부터 연이어 강도와 절도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서울 성북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오전 3시경 성북동 K대 한모 이사장 자택에 괴한한 명이 침입해 이사장과 몸싸움을 벌이다 도망쳤다. 한 이사장은 다치거나 금전 피해를 보지는 않았다. 그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폐쇄회로(CC)TV에 찍힌 영상을 경찰에 제출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로부터 이틀 뒤 오전 1시경에는 인근 도로를 지나가던 주민이 한 괴한의 칼에 목을 맞아 다치는 사건도 발생했다”며 “지난달 중순부터 성북동 부촌(富村)에서 강력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어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날 이 회장 집 근처에서 만난 한 주민은 “열흘 전쯤 주한 일본대사관저 인근 주택도 털렸다고 들었다”며 “연이어 도난사건이 발생해 동네 분위기가 흉흉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 집 앞은 최근 고용된 사설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경찰은 이 회장 집 절도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정모 씨(56)의 휴대전화 사용 위치와 차량을 추적하고 있다. 정 씨는 1997년 7월 친형(67)과 함께 성북동과 용산구 한남동 일대 재벌 집만 골라 털어 이름을 알린 ‘재벌가 전문 대도(大盜)’. 정 씨 형제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행한 ‘한국재계인명록’을 입수해 3개월 동안 용산구 한남동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등 국내 유수 기업 회장 자택 5곳을 털었다. 경찰 수사 결과 밝혀진 당시 피해액만 다이아몬드 반지와 금 열쇠, 현금 등을 합쳐 7억 원 상당. 정 씨 형제는 이들 저택에 전화를 걸어 가정부만 있는지 확인한 뒤 담을 넘어 들어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정부와 마주칠 경우 흉기로 위협하고 손발을 묶는 등 강도로 돌변하기도 했다.

범행 3개월 만인 1997년 10월, 형은 경찰에 붙잡혀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됐지만 동생은 형이 검거된 직후 홍콩을 거쳐 호주로 도주했다. 그는 출국 직전 훔친 귀금속 중 일부를 컵라면 용기에 담아 동대문세무서 앞에 가져다 놓은 뒤 경찰에 전화를 걸어 “훔친 물건을 돌려줄 테니 형에 대한 선처를 부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었는데도 헤픈 씀씀이 때문에 절도행각을 벌였다.

줄곧 해외를 떠돌던 정 씨는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난 것으로 착각하고 만기가 된 여권을 갱신하러 국내에 들어왔다 덜미가 잡혔다. 특수강도죄가 적용된 정 씨의 공소시효는 10년이었다. 구청을 찾은 정 씨는 전산망에 ‘수배 중’이라고 떠 여권이 갱신되지 않자 직접 경찰서로 가 수배 해제를 요구하다 그 자리에서 검거됐다.

3개월 전 출소해 다시 성북동을 찾은 정 씨는 14년 전과 유사한 방법으로 범행을 했다. 그는 오후 2시 15분경 가정부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이 회장의 집에 들어가 금품을 훔쳤다.

가정부 A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회장은 해외 출장 중이었고 나는 집에 있었지만 범인을 보진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보석함 속에 있던 다이아몬드와 드레스룸 서랍장에 보관 중이던 현금 뭉치 500만 원을 빼내 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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