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정치부 차장
이 의원은 때론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며, 때론 퉁퉁 부은 발에 침을 맞아가며 전 세계 오지를 돌아다녔다고 썼다. 지난해 리비아와의 외교단절 위기에 처했을 땐 리비아 당국자들에게 링거 주삿바늘 자국이 선명한 손등을 내보이며 하소연했고, 무아마르 카다피를 만나서는 ‘왕 중의 왕’이라 부르며 우리 외교관의 첩보활동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박 전 차관도 추락 위기 속에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던 얘기로 시작해 ‘미스터 아프리카’로 불릴 만큼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소개했다.
자원외교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과 함께 내세운 대표적인 외교정책 브랜드다. 이를 위해 대통령 형님과 최측근이 직접 앞장서 뛰었으니 그만큼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을 것이다. 더욱이 ‘상왕(上王)정치’ ‘만사형통(萬事兄通)’ 논란에 시달리다 정치 2선 후퇴를 선언했던 이 의원이고, ‘왕비서관’ ‘왕차관’이라 불리며 수많은 구설수에 올랐던 박 전 차관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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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들은 “자원개발은 원래 위험이 많고 시간이 걸린다” “현 정부의 자원외교 성과는 다음, 그 다음 정부가 받게 된다”고 강변한다. 맞는 말이다. 오랜 석유개발의 역사가 증명하듯 자원산업은 어느 분야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리스크가 커 대박과 쪽박 양극단을 넘나드는 게 사실이다.
이들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한 자원 전문가는 이들이야말로 자원외교의 적임자라고 주장한다. 상당수 자원부국이 독재와 내전, 부정부패로 얼룩진 ‘자원의 저주’에 빠진 나라여서 통상적인 외교관계나 비즈니스로는 접근이 어려운 만큼 ‘상왕’ ‘왕차관’ 같은 실세가 아니면 상대국 권력자에게 제대로 어필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21세기 자원전쟁 시대에 정부가 나서 민간과 함께 자원 확보를 위해 총력전을 펴는 것은 일반적인 추세다. 하지만 시스템이 아니라 실력자의 개인기를 앞세운 외교는 무리가 따르고 잡음이 일게 마련이다. 나아가 이들이 바뀐 이후의 한국 자원외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흔히 중국의 아프리카 자원 독식을 비난한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1950년대부터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 아프리카 국가들에 일방적인 원조를 제공해 왔다. 실리보다 이념을 앞세운 외교의 산물이지만 이를 통해 구축한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가 이제 그 결실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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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정치부 차장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