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애버크롬비&피치, 나이키, 라코스테 매장(위부터). 거리 분위기가 활발하고 젊게 바뀌면서 프랑스 고유의 색채는 옅어졌다. 파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미국 캐주얼 패션 브랜드 ‘애버크롬비&피치’의 등장이다. 올해 5월 문을 연 이 매장 앞에는 사람들이 겹겹이 줄을 서 있었다. 건물이 고풍스러운 데다 간판도 잘 보이지 않아 처음에는 미술관인 줄 알았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오르세 미술관 앞에서는 그처럼 구불구불 줄을 선 모습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이리저리 둘러보다 애버크롬비&피치 간판을 발견했다. 애버크롬비&피치는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브랜드로, 뉴욕 매장에도 제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선다. 이 브랜드는 식스팩 복근을 자랑하는 ‘얼짱 짐승남’을 내세워 마케팅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꽃미남 몸짱’ 남성 직원들은 웃통을 다 드러내놓고 근무해 여성 쇼핑객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겨울에는 주로 청바지만 입지만 여름에는 수영복을 입고 근무하기도 한다.
너무나도 미국적인 이 브랜드가 샹젤리제 거리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매장 앞을 지키는 직원들은 물론 젊은 남성이었지만 웃통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았다.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모두가 몸매 좋은 꽃미남은 아니었지만 큰 키에 어깨가 딱 벌어진 일부 직원도 눈에 띄었다. 혹시나 해서 한 직원에게 다가가 “오늘 이벤트가 열리는 날이냐”고 물었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이벤트가 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제품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선 것”이라며 “이 매장은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 전체에서 단 하나뿐인 ‘애버크롬비&피치’ 매장”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 매장이 들어설 당시 프랑스에서는 샹젤리제 거리가 고유의 색채를 잃어버리고 있다며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고 한다.
광고 로드중
샹젤리에 거리에 남아 있는 고급 브랜드는 오메가, 카르티에, 루이뷔통, 메르세데스벤츠 정도였다. 루이뷔통 매장 앞에 제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주로 동양인이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광경은 변하지 않았다.
샹젤리제 거리를 글로벌 브랜드들이 휩쓸게 된 것은 치솟는 임대료가 가장 큰 원인이다. 샹젤리제 거리의 상가 임대료는 m²당 연간 7000∼1만 유로(약 1120만∼1600만 원)에 이르러 자본력이 약한 프랑스 자체 브랜드나 과거부터 이곳에 있었던 브랜드는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환중 제일모직 파리사무소 대표는 “샹젤리제 거리는 세계 곳곳에서 워낙 많은 관광객이 찾기 때문에 수익보다는 광고 효과를 노리고 매장을 내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광고 효과를 위해 매장을 지탱해줄 수 있는 탄탄한 자본을 가진 글로벌 브랜드만이 버틸 수 있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프랑스에서는 샹젤리제 거리가 외국 자본에 의해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이 나오지만 샹젤리제 거리는 이미 쇼핑과 엔터테인먼트의 거리가 됐고 이런 현상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파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