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200여 점 특별전
약 400년 전 네덜란드에 건너간 이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화가 루벤스가 조선 사람을 모델로 그린 ‘한복 입은 사람’ (1617∼1618년경).
○ 충효의 실천에서 일상의 발견으로
조선시대 어진이나 사대부 초상화의 가장 중요한 제작 목적은 이들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그 위업과 정신을 기리는 것이었다. 초상화를 통해 충효의 유교 덕목을 구현하려 한 것. 터럭 한 올 틀리지 않도록 엄정하게 그린 것도 초상 속 주인공의 정신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 내면의 성찰, 자화상
자화상은 초상화 가운데서도 독특한 장르다. 자신의 얼굴을 그린다는 것은 내면에 대한 성찰 없이는 불가능한 일. 귀도 목도 없이 얼굴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윤두서 자화상(18세기 초)은 화면 속 주인공의 맹렬한 눈빛과 독특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명작이다. 최근 사진 자료 발굴과 X선 촬영에 힘입어 당초에는 귀도 있고 옷선도 그려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귀가 너무 작아 왜 그렇게 그렸는지, 옷선은 왜 지워졌는지 또 다른 궁금증을 낳고 있다.
고희동의 유화 자화상(1915년)에서는 한국 최초 서양화가로서의 자의식을, 이쾌대의 자화상(1948∼49년)에선 1940년대 좌우 이데올로기와 예술의 현실참여 속에서 고뇌했던 예술가의 내면을 만날 수 있다.
○ 외국인이 그린 한국인 초상
대체 귀와 목은 어디로 간 것일까. 강렬한 눈빛과 독특한 구도에 힘입어 조선시대 초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윤두서의 자화상(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사진이 초상화에 미친 영향
19세기 말 보급된 사진술은 초상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진용 포즈나 소품이 초상화에 등장했으며 아예 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채용신이 그린 황현 초상(1911년)이 대표적이다. 모본이 됐던 인물 사진도 함께 전시했다. 고종의 사진이 유포되면서 사진을 보고 그린 고종 초상화도 많았다. 현재 거의 똑같은 포즈의 고종 초상화가 많이 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월요일 휴관. 02-2077-9265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