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 짝 잃고… 2세도 못보고… 거동 못하고…
늠름하던 그 모습 어디로… 1994년 ‘백두’(앉아 있는 호랑이)와 ‘천지’가 국내에 들어온 직후 모습(위쪽 사진). 백두는 최근 노화로 거동이 힘들 정도로 쇠약해졌다가 극적으로 기력을 되찾았다. 국립수목원 제공
○ 생사기로에서 극적 소생
호랑이의 수명은 보통 15∼20년이다. 백두는 사람으로 치면 80세를 넘길 정도로 오래 산 것. 고비는 있었다. 올해 초 백두는 극심한 식욕부진과 기력저하에 빠졌다. 특별한 병은 없었다. 나이가 문제였다. 이미 뒷다리는 제대로 서지 못해 끌고 다닐 정도였다. 2월 말 백두를 검진한 서울대 수의대 측은 “마취 후에 방사선 촬영 등 정밀검사를 할 수도 있으나 고령이라 마취도 어렵다”며 “고령에 따른 주요 기능 저하로 갑작스럽게 폐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수목원 측은 백두의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호랑이가 좋아하는 싱싱한 소의 간에다 소염제 간기능개선제 등 각종 치료약을 섞어 먹였다. 정성이 통했는지 한 달여 뒤 백두는 극적으로 기력을 되찾았다. 지금은 하루 5kg가량의 고기를 먹는다. 다만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실내 사육장에서 누워 지낸다. 과거 한국에 올 때 선명하던 줄무늬는 색이 바랜 지 오래다. 두 눈은 백태처럼 하얀 빛이 돌았다. 인기척이 들리면 가끔 고개를 들어 소리를 내거나 힘겹게 일어나 몇 걸음 걷는 것이 전부다.
백두가 처음 한국에 올 때부터 지켜본 황근연 연구사(51)는 “그래도 먹이를 제대로 먹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노인처럼 음식을 거부하는 순간이 오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백두와 함께 중국에서 건너온 암컷 ‘천지’는 지난해 5월 노화로 폐사했다. 둘 사이에 2세는 없다. 10년에 걸친 번식 시도는 실패했다. 백두에게 비아그라를 먹이기도 하고 호랑이 교미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교미 자체가 이뤄지지 못했다. 백두는 적극적이었지만 천지가 제대로 호응하지 못했다. 방한한 중국인 전문가들도 두 손을 들었다.
공교롭게 백두에 이어 2005년 중국에서 건너온 백두산호랑이 한 쌍 중에서 현재 수컷 ‘두만’(열 살)만 남았다. 암컷 ‘압록’은 다섯 살이던 2006년 세균성 신장염으로 폐사했다. 두만 역시 2세 번식에 실패했다. 폐사한 암컷 두 마리는 박제로 남아 현재 국립수목원에 전시돼 있다.
○ 2세 번식의 꿈은 다음으로
백두산호랑이 번식의 꿈을 이뤄줄 것으로 기대되는 세 번째 백두산호랑이 한 쌍이 10월경 중국에서 온다. 산림청은 지난해 중국 정부와 ‘백두산 호랑이 종(種) 보전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하얼빈(哈爾濱)의 호랑이 전문 사육기관에서 호랑이를 들여와 2014년 경북 봉화에 개장하는 백두대간수목원 내 ‘호랑이숲’에서 관리할 계획이다. 수목원 개장 전까지는 대전오월드(동물원)에서 위탁 사육한다.
현재 국내에는 약 50마리의 백두산호랑이가 있고 일부 동물원에서 번식에 성공했지만 산림청은 정부 차원의 종 번식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백두나 두만이 실패한 백두산호랑이 2세 번식의 임무는 새로 올 호랑이가 짊어지게 됐다. 황 연구사는 “백두가 호랑이로 태어나 자기 후손을 남기지 못한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