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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장훈]안철수, 구태 정당에 ‘한 방’ 먹였다

입력 | 2011-09-06 03:00:26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보수와 진보의 경계선을 따져보자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촉발했던 무상급식 논쟁은 어느덧 ‘안철수 현상’으로 슬그머니 전환되고 있다. 아직 출마 선언도 하기 전이지만, 안철수 서울대 교수에 대한 여론의 쏠림은 일회성 사건을 넘어 정치 태풍으로 커 갈 잠재력이 충분해 보인다. 각계 전문가들은 안철수 태풍의 이면에 자리 잡은, 정치에 대한 깊은 실망감 그리고 신선한 인물에 대한 기대감을 풀이하기에 바쁘다. 또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포함한 정치권은 안철수 현상이 서울시장 선거의 향배에 작용할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에 부산하다.

‘제3의 정치시대’ 개막 신호탄

필자는 안 교수가 그의 희망대로 50일 후에 서울시장 자리에 앉게 될지를 예측할 만한 능력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지금의 안철수 현상은 우리 정치가 새로운 단계로 진화하는 하나의 길목이 되리라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안철수라는 장외(場外) 인물이 보수-진보정치를 한꺼번에 비판하면서 정치의 한 축으로 급부상하는 현상은 이른바 ‘삼각정치의 시대’가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다시 말해 우리 정치는 더는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나는 것이 아니라 안 교수의 말대로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어떤 새로운 움직임이 정치의 제3의 축으로 합류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에서 새로운 단계는 항상 그 흐름을 상징하는 아이콘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진다. 1970년대 초반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등장한 김영삼 김대중은 이후 20여 년간 민주화 시대를 주도한 바 있다. 또한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는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정책경쟁의 시대로 본격 진입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보수와 진보의 경쟁구도가 채 굳어지기도 전에 기존 관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제3의 축이 안철수라는 아이콘을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진보-신(新)정치가 꾸려가는 삼각정치는 앞으로 몇 가지의 핵심적 특성을 드러낼 것이다. 첫째는 보수-진보 중심의 제도정치와 제도권 밖의 장외정치가 적대적이면서도 동시에 서로에게 의존하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룰 것이라는 점이다. 안철수 현상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제2, 제3의 안철수 역시 제도정치권의 실패와 위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정치는 역설적으로 기성정치와 공생관계에 있다. 마찬가지로 보수-진보정치 역시 신정치에 적지 않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곳곳에서 동맥경화를 보이는 기존의 보수-진보 정당들은 결국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신정치가 제기하는 이슈들뿐만 아니라 정치 스타일마저도 수용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 아이콘, 장외정치 주도할듯

둘째는 제도정치에 도전하는 제3의 장외정치는 대개 디지털 문명의 흐름을 상징하는 디지털 아이콘(digital icon), 즉 디지콘(digicon)들에 의해 주도될 것이다. 지금까지 기성정치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도전자들이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한 금력정치인(plutocrat)이었다면(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나 태국 탁신 친나왓을 상기해보라) 우리의 정치 환경에서는 새로운 인터넷 기술이나 문화 트렌드를 이끄는 디지콘들이 장외정치를 주도할 것이다. 이는 신정치의 지지기반이 주로 도시빈민과 하층민으로 이뤄진 다른 나라들의 사정과는 달리 우리의 경우는 디지털세대와 교육 수준이 높은 층에서 신정치의 요구가 더욱 거세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끝으로 필자가 정말 궁금한 것은 안철수 현상에 대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인식이다. 이들의 머릿속에서 안철수 현상은 그저 영입 또는 포섭의 대상인가. 혹은 치열하게 공격하다가 맥없이 무너지면 걷어낼 거품인가. 혹은 새로운 미래로 가는 기관차일까. 앞으로의 50일이 많은 것을 밝혀 주리라 기대해본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