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접시위에 프랑스 맛 그리는 예술가
붉게 물든 이찬오 셰프의 짧은 머리 스타일만 보면 그의 요리도 톡톡 튈 것 같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호주 유학중 천직 찾은 28세 훈남
이찬오 임피리얼팰리스호텔 셰프가 호주에서 일할 당시 현지 언론에 소개된 굴샌드위치다. 당시 ‘형식을 파괴하는 젊은 요리사’로 선정된 이 셰프는 굴 안에 빵을 부풀리며 특유의 고소한 냄새를 풍기게 만드는 이스트를 주사기로 주입하는 방식으로 굴 샌드위치를 표현해 냈다. 올해 28세가 된 젊은 요리사의 톡톡 튀는 발상에 입도 눈도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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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리 하나하나를 들어 테이블에 진열하는 그의 모습은 섬세한 작가처럼 보였다. 적당히 삶은 바닷가재에 당근 퓌레와 꽃이 함께 장식된 요리는 화려한 색 때문에 눈부터 즐거워졌다. 한입 베어 무니 바닷가재 위에 놓여 있던 캐비아가 가진 바다향이 입안을 파도처럼 감싸 안았다. 땅 냄새 가득한 숯 향이 잔잔한 파도처럼 바로 이어졌다. 마치 모래사장 위에 비스듬히 누워 눈앞 바다를 바라보는 여유로운 모습이 떠올랐다. 이 셰프는 “바닷가재 자체가 달콤한 식재료이기 때문에 꽃의 쌉쌀함이 더해져도 음식으로 큰 무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호텔에서 그가 선보인 요리는 하얀 액자 속 정물화처럼 정갈하고 다소곳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어느 날 테이블에 나가기 전 하얀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이 마치 그림처럼 보였어요. 마치 하얀 액자 속에 들어간 한 폭의 그림처럼요. 어릴 때부터 미술과 음악을 좋아했던 저로선 이렇게 좋은 직업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각가였던 아버지와 의상디자이너로 일했던 어머니, 그리고 지금은 보석디자이너로 일하는 여동생까지 ‘끼’가 넘치는 집안 분위기로 미뤄 봤을 때 요리사라는 그의 선택은 너무 당연했을지 모른다. 이 셰프는 “스포츠마케팅 공부 대신 셰프가 되겠다는 마음을 정하는 데 그렇게 1년이 걸렸다”며 “이후엔 단 한 번의 고민과 망설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고 말했다. 그렇게 호주에서 6년을 보냈다. 그는 꽤 이름 있다는 레스토랑에서 헤드 셰프로도 일했다.
프랑스에서 정통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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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경험한 일상은 상상 이상으로 고됐다. 호주에선 명색이 헤드 셰프로서 자기 색을 낼 수 있었지만 파리에서는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오전 7시에 일어나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일하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이 셰프는 “그렇게 한 달 월급을 받으면 평소 가보고 싶었던 최고급 레스토랑을 찾아가 나만의 만찬을 즐겼다”며 “사실 그것도 하나의 배움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그러다 과거에 같이 일했던 동료로부터 네덜란드 헤이그의 한 레스토랑에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아직은 젊기에 더 많은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었다. 채 1년이 안 되는 기간을 헤이그에서 셰프로 활동하다 2009년 군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군 입대 후에도 공관 요리병으로 일하며 요리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의 다양한 식재료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20개월의 군 복무 후 단 하루의 백수 시절도 없이 호텔에 들어왔다. 기자와 만난 날 이 셰프는 도가니를 삶아 허브에 재우고 복어의 곤이를 삶아 그릴에 살짝 구운 요리를 소개하기도 했다.
베로나는 이탈리아식당이지만 이 셰프가 선보이는 요리는 모두 정통 프랑스 요리다. 국내엔 이렇다 할 정통 프랑스 식당이 많지 않은 터라 임피리얼팰리스호텔은 이 셰프의 영입을 계기로 본격적인 프랑스 요리를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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