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기 전에 수희도 여자란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박지원 씨(왼쪽)와 함경록 감독. ‘영화배우’인 박씨는 여유가 있었지만 함 감독은 쑥스러워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박 씨는 9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숨’에서 주인공 수희 역을 열연해 주목받고 있다. 장애인이 장애인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주인공을 맡은 적은 있지만 극 영화에 헤로인으로 나온 일은 이례적이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 문소리가 장애인 여성을 연기했지만 그는 장애가 없는 직업배우였다.
함경록 감독의 ‘숨’은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 여성 수희가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눈 뒤 임신하고,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낙태를 권유받는 이야기를 담았다. 2009년 전북 김제시의 한 복지시설에서 발생한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작품이다.
2009년 5월 전북 전주시 중증장애인 지역생활지원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박 씨는 이곳에서 영화 강의를 맡은 함 감독에게서 출연 제의를 받았다. 애초에 함 감독은 직업배우를 캐스팅하려 했지만 장애인만이 느낄 수 있는 섬세한 감정을 담으려면 장애인 배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힘든 영화 촬영에 노출신도 있었지만 박 씨는 욕심이 났다. 영화를 위해 학교를 두 학기 휴학했다. 4개월간 수희 캐릭터에 대해 함 감독과 토론하는 등의 준비를 거쳐 보름 동안 촬영했다. 감독과 스태프는 박 씨의 ‘자연스러운’ 장애인 연기를 카메라에 담아냈다.
“수희는 장애인이기 전에 (사랑하고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여자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비장애인들은 장애인 여성을 제3의 성으로 보죠. 여자도 남자도 아닌 오로지 장애인으로…. 이런 편견이 깨졌으면 해요.”
함 감독도 “이 영화를 통해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비장애인과는 다른 존재로 보기보다 우리와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으로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벨기에 브뤼셀유럽영화제 황금시대상,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 버터플라이상 등을 수상했다. 연말 신인여배우상이 욕심나지 않느냐고 묻자 박 씨는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떨려서 잠을 못 잘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이 연기하고 싶은 남자배우를 묻자 함 감독은 박 씨가 주진모를 가장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마냥 씩씩하던 박 씨의 두 볼이 빨개졌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