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주 사과밭 - 음성 배밭 가보니
18일 충북 충주시의 사과농민 이종성 씨가 추석을 앞두고도 여전히 초록색인 사과밭을 가리키며 애를 태우고 있다. 날이 화창했던 이날, 그는 인부들을 고용해 3만3000㎡(약 1만 평) 땅 위에 심어진 사과나무의 사과잎을 일일이 손으로 따고 있었다. 그는 “사과 알 주변의 잎을 따줘야 햇볕이 조금이라도 더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충주=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18일 충북 충주에서 만난 사과 재배 농민 이종성 씨 얘기다. 다음 달 12일 추석을 앞두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차례상 과일인 사과와 배 작황을 알아보기 위해 충북 충주와 음성 지역을 찾았다. 두 지역은 품질 좋은 사과, 배가 생산되기로 이름난 지역이다. 농민들은 유난히 나쁜 작황에 애를 태우고 있었다.
○ ‘초록 사과’에 애타는 농심(農心)
이 씨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런 해를 본 게 정말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농사꾼들한테 올해는 정말 최악입니다. 6월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해가 제대로 난 건 8일 정도뿐이었어요.”
올여름 사과 농가들은 방제만 하다가 한 계절을 다 보냈다. 끊임없이 비가 오는 습한 날씨 탓에 과수 전염병이 급속도로 퍼졌는데, 농약을 치고 나면 또 비가 오고, 다시 치고 나면 또 비가 와 이 씨의 경우 농약 값과 자재비만 다른 해보다 30% 더 들었다고 한다.
그는 “해를 볼 수 없으니 열매도 잘 안 열리고 크기도 안 크다”며 “정부와 언론에서는 자꾸 과일 값이 비싸다는 얘기만 하는데 농민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시세가 올라도 올해는 양이 안 나와서 적자가 날 판”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이 그나마 제값을 받고 과일을 팔려면 추석 전에 사과를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사과색이 전부 초록색인 게 문제다. “제사상에 올려야 하는데 누가 초록 사과를 사겠어요? 올해는 추석이 지난해보다 열흘이나 빠른 데다, 올봄에 날씨가 추워서 개화까지 열흘 이상 늦어지다 보니 과일이 익을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도 이 씨와 박 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이들 농장 주변의 다른 사과 농장 중에는 병이 들고 사과나무 잎이 다 떨어져 사실상 폐농 상태인 농장들도 많았다. 충북원예농협 이상복 과장은 “예전에는 날씨가 안 좋아도 농사를 잘 짓는 상위 30% 농가들은 피해가 없었는데 올해는 10% 정도만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 배밭은 전염병 창궐
이번에는 음성으로 가 배 농장을 둘러봤다. 배는 사과보다 작황이 더 나빴다. 곳곳에 사실상 농사를 포기한 배 밭이 여기저기 방치돼 있었다. 배와 배나무 잎이 검게 변하는 과수 전염병에 걸린 밭이었다.
음성에서 배 농사를 짓는 원희성 씨는 쉬지 않고 방제해 다행히 큰 전염병은 피했다. 하지만 그 역시 수확량이 확 줄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원 씨는 “개수도 안 나오고, 크기도 자잘하고, 병든 과수도 많아 올 추석엔 평년의 절반밖에 출하를 못할 것 같다”며 “방제도 열심히 하고 성장 촉진제도 줘 봤지만 비가 계속 쏟아지니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그가 보여준 배는 배가 아니라 작은 감 크기였다. 이맘때쯤이면 배를 감싸는 종이봉지가 탱탱하게 차올라야 하는데, 그런 배는 나무 한 그루에 몇 알 되지 않았다. 원 씨는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종이봉지를 벗겨보면 병과(病果)인 게 많다”며 “안성에서 배 농사를 짓는 지인도 전염병 피해를 보아 생산량이 5분의 1로 줄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들은 정부의 물가대책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충주 지역의 한 사과 재배 농민은 “정부가 여름에 나오는 아오리 사과 500t을 미리 수매했다가 추석 때 방출하는 걸 물가 대책이라고 내놨던데 웃기는 일”이라며 “아오리는 저장성이 없어 일주일만 지나도 퍼석해서 못 먹는데 이런 게 돌면 사과에 대한 소비자 인식만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충주·음성=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