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러시아연구소장
우리 정부를 포함해 관련국들의 관심은 김정일의 방러 목적과 북-러 정상회담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미칠 영향에 모아진다. 김정일의 방러 배경은 북한이 처한 대내외적 환경과 북-러 간 여러 현안 분석을 통해 추론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방러의 주요 목적으로 김정은 후계체제 안착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교착국면의 6자회담을 평양에 유리한 조건과 형식으로 재개하기 위한 환경 조성, 에너지 및 경제난 극복을 위한 지원 호소, 중국과 러시아 균형외교 복원을 통한 국익 극대화, 러시아제 첨단무기 요청, 약 38억 루블 규모의 채무 탕감 등을 제시한다.
광고 로드중
러시아도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의 국익 증대를 위해 대북 협력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의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 해소에 일종의 출구를 제공함으로써 시베리아 극동지역의 안정적 개발과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에 유익한 환경을 형성할 수 있다. 또 대북관계 공고화는 평양에 대한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 견제효과와 더불어 6자회담을 포함해 한반도 정세 운용 과정에서 동원할 수 있는 전략적 레버리지 확대 기회도 부여한다.
현 시점에서 북한과의 관계 강화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지정학적 이익이다. 남-북-러 3각 경협을 활성화함으로써 러시아 정부가 국가적 명운을 걸고 추진 중인 시베리아 극동지역 개발에 탄력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렘린이 과거부터 남북한을 대상으로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3대 숙원사업, 즉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사업, 러-북-남 전력망 연계사업과 가스관 부설사업 등은 북한과의 협상 여하에 따라 조속히 실현될 수 있다.
북-러 정상이 모두 다중적 포석을 깔고 회담에 임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중국 견제라는 외교적 공통분모 위에 북한은 정치(김정은 후계 구축), 러시아는 경제(남-북-러 삼각 경협)에 주안점을 두고 회담에 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9년 만의 북-러 정상회담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과거 북의 후원자로서 러시아의 역할을 연상하면서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다. 하지만 북-러 간 동맹관계가 해체된 지 이미 오래고, 러시아가 북한보다도 한국과 훨씬 더 중요하고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안보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또 그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나름대로 기여해왔다는 점을 두고 볼 때 북-러 정상 간 회동이 한반도 정세와 한국의 국익에 오히려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필자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이번 회담이 북한의 개혁과 개방, 비핵화를 촉진하고 북을 관통하는 철도와 가스관 연결을 앞당겨 한반도 평화구도 정착과 동북아의 공동번영에 기여하는 중요한 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