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전문기자
그래서 스스로 해답 사냥에 나섰다. 답은 위키피디아에 있었다. 이 인터넷 백과사전에 대해서는 정확성 논란이 상존한다. 그래서 ‘확답’이라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상식선에서 부족함이 없어 소개한다. 저팬의 어원은 ‘치팡구(Cipangu)’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13세기 발간)에 등장한 최초의 외국어 표기다. 치팡구는 ‘르번’(日本의 중국 표준어발음)을 ‘지펑’으로, ‘궈(國)’를 ‘구’로 읽는 오어(吳語·장쑤 푸젠 저장 성과 상하이 지역 방언)에서 왔다. 현재 공식국명 ‘일본국(日本國)’ 그대로다. 그리고 마르코 폴로는 양저우(장쑤 성)에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한중일 삼국에서 ‘일본’이 통칭된 건 8세기부터다. 이전은 달랐다. 우리에게 익숙한 ‘왜(倭)’다. 왜에서 일본으로 국명이 바뀐 이유. 구당서(舊唐書·10세기 편찬된 290년간 당나라 역사서)에 있다. ‘일본인 사절이 왜국으로 불리기를 꺼려해 고쳤다’는 기록이다. ‘왜’는 ‘난쟁이’ ‘단구(短軀)’를 뜻한다. 당시 왜가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러니 개명에 진력했을 것임은 불문가지. 결국 성공했다. 그 주역은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황제 측천무후(624∼705). 중국 역사서 ‘사기정의(史記正義)’는 그녀가 일본 사절에게 ‘일본’으로 개명을 지시했다고 기록했다.
광고 로드중
최근 동해 및 독도 문제 취재 중 이런 일본의 집요함과 주도면밀함을 또다시 확인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정(패전국 일본의 권리 포기를 규정한 국제협정·1951년) 과정에서다. 협정초안 작성 초기(1947년)만 해도 독도는 우리 땅이었다. 그래서 초안(제1∼4)에 ‘일본의 포기 대상 영토’로 명시됐다. 그런데 2년 후 난데없이 그 원칙이 바뀐다. ‘독도’가 포기 대상에서 ‘새로운 일본(new Japan)’ 영토로 편입된 것이다.
당시 일본은 어줍지도 않은 문서로 미국을 회유했다. 그걸 뒤엎으려는 우리의 외교적 노력도 있었지만 2년 후 단 한 차례 주미 한국대사 협의에 그쳤다. 결과는 별무소득. 당시 딘 러스크 국무부 극동지역보좌관은 독도 제외 사유를 이렇게 밝혔다. ‘1905년 이후 한 번도 한국 영토로 천명된 적이 없어서.’ 반대로 이 공문서는 독도가 일본 영토에 편입된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일본의 주장이 오래됐고 또 분명해서’라고.
독도와 동해를 되찾으려면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 주도면밀하고 집요하게, 그리고 뚝심 있게. 싸움은 이제부터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