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김종래의 펜은 눈물을 머금었다”
한국 만화계의 산 증인들이 모여 앞서 간 김종래 작가를 추억했다. 왼쪽부터 김형배, 조항리, 이두호, 박기정, 조관제, 김산호, 박기준 작가. 원로 만화가들 뒤로 고인의 생전 모습과 그의 작품들이 보인다. 부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몰랐소, 나는 몰랐소. 당신이 진정 모진 풍파를 겪은줄 나는 정말 몰랐소.” 김종래 작가의 ‘눈물의 수평선’에 나오는 대사를 원로 만화가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부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만화가 나왔을 때는 6·25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이 만연할 때였죠. 피붙이와 생이별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희망도 전혀 없었지요. 김종래 작가는 그 당시 사람들이 괴로움을 잊어버릴 수 있게 만들어 주었어요. 아픈 사람의 마음까지 달래줄 수 있는 그런 만화였지요.”(박기준 작가)
김 작가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우리 근현대사의 애환을 겪으며 한국 만화를 개척한 1세대 만화가의 대표자로 꼽힌다. 조항리 작가는 전시물에 손을 얹으며 “붓과 펜의 심지에 눈물을 심은 듯 선생의 작품은 눈물의 색채를 띤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국적인 선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만화를 그리며 한국 만화의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그의 그림에 깃든 것은 한국화의 원류였어요. 만화를 보면 ‘이것은 하나의 동양화다, 인물화다’라는 느낌이 듭니다.”
일본 만화나 이렇다 할 특징 없는 만화가 가득했던 1950년대에 김 작가는 동료 만화가들과 함께 끊임없이 ‘한국적인 만화’를 고민했다. 그 결과 ‘전통극화의 개척자’란 평가를 받으며 만화가 생활 25년간 약 200종, 1500여 권에 이르는 작품으로 한국 만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선생의 만화는 음악으로 치면 클래식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제게 최초로 영향을 주신 분입니다. 그때의 영향이 지금 제 제자들에게도 전해지고 있어요. 우리가 현재에도 그를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죠.”
김형배 작가와 이두호 작가는 현대 만화에서 그의 의미는 더욱 크다고 입을 모으며 “쉽게 그리고, 쉽게 잊혀지는 만화가 아닌,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고인의 만화와 같은 작품들이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부천=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