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조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지주 매각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정부가 애초부터 민영화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유(國有)은행인 우리금융을 사모펀드에 파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도 '규정을 지켰다'고 변명하기 위해 형식적인 입찰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17일 우리금융 매각 입찰을 한 결과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 1곳만이 제안서를 냈다고 밝혔다. 2곳 이상이 입찰에 참여하는 '유효경쟁' 원칙에 위배돼 입찰은 유찰됐다. 법적으로는 MBK파트너스와 수의계약을 할 수도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 우리금융 인수에 관심을 보인 다른 사모펀드인 티스톤파트너스와 보고펀드는 최근 금융시장 불안으로 우리금융의 성장에 도움을 줄 만한 전략적 투자자를 구하지 못한 데다 인수자금 조성액도 당초 기대에 못 미쳐 입찰서를 내지 못했다.
금융계에서는 정부가 2001년 3월 부실이 심했던 한일 상업 평화 광주 경남은행을 합쳐 우리금융을 설립한 뒤 줄곧 민영화 의지를 피력했지만 실제로는 정부 구미에 맞는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지금의 국유은행 체제를 유지하길 원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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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에는 5월 다른 금융지주회사가 우리금융을 인수할 수 있도록 최소 지분 인수한도를 현행 '95%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완화해주는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민영화작업이 이미 중단됐다고 본다. 자금력 있는 금융지주회사가 주체가 돼 우리금융을 인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모펀드만 대상으로 한 입찰은 일종의 '면피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우리금융지주의 한 임원은 "과거 하나은행이 미국의 소규모 은행을 인수하려 할 때 미국 정부가 하나은행 대주주가 싱가포르 국부펀드라며 제동을 걸었다"며 "신뢰도가 높은 국부펀드가 작은 은행을 사는 것도 안 되는데 사모펀드가 큰 은행을 인수하는 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상당 기간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지주회사를 배제한 현행 법 체계를 정비해 매각을 재추진하려면 여론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1년 반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새 틀을 짜기가 쉽지 않다.
지금이라도 우리금융 지분 매각방식을 다양화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입찰 무산 직후 연기금, 각종 공제회, 국부펀드 등 잠재적 투자자집단을 지정한 뒤 이들이 참여하는 경쟁 입찰을 통해 우리금융 지분을 분산 매각해 과점적 지배체제를 구축하는 방식이 부각되고 있다. 2003년 말 정부가 갖고 있던 국민은행 주식을 팔 때 적용한 '지명식 경쟁입찰' 방식로 한 회사가 우리금융 지분을 통째로 사기 힘든 점을 감안한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공적자금 회수라는 재정적 목표와 은행업 발전이라는 금융 정책적 목표가 충돌하는 상황"이라며 "매각 후 주가가 급등하면 차익을 공적자금으로 환수하는 식의 보완책을 두고 민영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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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