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이익 넘어 시대적 소명을 읽었던 이병철-정주영-최종현 회장
재계에서는 “지천명(知天命·50세를 일컫는 말)을 맞은 전경련이 제 역할을 하고, 직원들이 생기를 되찾도록 하려면 과거 ‘명예로운 전경련’을 이끌었던 회장들에게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전경련에 오래 몸담은 이들이 역대 회장 가운데 특히 뛰어난 인물로 꼽는 이는 전경련을 만든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이다. 이들은 동아일보가 올해 창립 91주년을 맞아 선정한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 가운데 차세대 경제인들이 ‘롤 모델’로 가장 많이 꼽은 세 명이기도 하다. 그만큼 경제계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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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이 전경련의 기틀을 닦았다면 정주영 회장은 최장수 회장으로 전경련을 명실상부한 최고의 경제단체로 끌어올렸다. 1977년 4월부터 내리 10년간 13∼17대 회장을 지내면서 정경 유착으로 얼룩진 격변의 1980년대를 돌파했다. 1980년대 중반에 전두환 대통령을 비롯한 군부 출신 관료들이 몇 차례 ‘좀 더 만만한 이’로 전경련 회장을 물갈이하려 했지만 정 회장이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는 뒷얘기도 있다. 정 회장의 최대 공로는 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1988년 여름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한 것이다. ‘동북아 정세 한미일 회의’라는 사업을 만들어 한동안 얼어붙었던 한미 관계를 풀어냈던 것도 재계의 역할을 확장시킨 성과다.
1993년에 21대 전경련 회장으로 취임해 6년간 일한 최종현 회장은 글로벌화가 급격히 진행된 1990년 대에 대기업에 방향타를 제시한 인물로 꼽힌다. SK그룹을 이끌면서 국제화와 인재 양성을 강조했던 최 회장은 전경련에서도 대기업들이 국가경쟁력 강화에 앞장서도록 독려하고,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 동참하도록 이끈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폐암으로 투병하면서도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을 찾아가 비상 대책을 강구하도록 고언을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최근 전경련이 무리한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경제연구원을 떠난 한 원로급 연구원은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 기업, 그리고 대기업만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했다. 전경련이 다시 과거와 같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재계의 이익에 급급하기보다는 역대 발군의 회장들처럼 시대적 소명을 읽고 대의를 위해 뛰는 ‘미래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