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철 한국해양연구원 해양기술정책연구부 선임연구원
그동안 제4판 개정작업이 지연된 이유는 남북한과 일본이 동해 명칭 표기 문제로 번번이 격론을 벌였기 때문이다. 결국 IHO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한 27개국이 참여하는 별도의 실무그룹을 구성해 제4판 발간작업을 추진하도록 했다. 실무그룹은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4월 모나코에서 열리는 IHO 총회에 초안을 제출해 이 문제를 결정할 예정이다. 실무그룹 멤버인 미국의 의견이 다른 회원국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늦지 않았다. 단지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 것인가가 문제다. 현 단계에서는 동해 명칭을 병기토록 해당 실무그룹 중심의 외교력을 발휘하거나 총회 결정을 연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실무그룹은 참여 전문가 간 비공개 협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어 접근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제3판이 취한 방식을 제안할 수는 있다. 예컨대 1953년 발행된 제3판은 황해를 ‘Yellow Sea(Hwang Hai)’, 동중국해를 ‘Eastern China Sea(Tung Hai)’라는 중국식 발음 표기를 병기하고 있다. 하물며 명칭에 대한 경합이 있는 동해에 ‘East Sea’를 최소한 병기하는 것은 전혀 무리한 주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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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체계적이고 인내력 있는 연구와 접근이 요구된다. 해양이 장기적 모니터링을 필요로 하는 공간임을 고려하면 우리 것을 지키는 작업이 어디에서 잘못됐는지는 자명하다. 우리 바다를 이해하고 알릴 만한 자료가 많지 않으니 누구를 설득한단 말인가. 결국 동해 표기 문제는 해양과학 연구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 정부가 독도 인근 해역에 종합해양과학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고무적이다. 과학기지를 통해 해양과 기상, 어장 예보뿐 아니라 전 지구 기후변화, 해상교통안전 등 다양한 연구 성과가 예상된다. 동해에 대한 주권적 권리와 독도 영유권 수호 문제를 학술적으로 이해시키고, 자생적 파급력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바다는 지키고 관리하되 우리 것임을 공고히 하기 위한 객관적 설득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 영토를 ‘우리 것’이 되도록 만드는 길이다. 동해 지명, 아직 늦지 않았다.
양희철 한국해양연구원 해양기술정책연구부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