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폭동은 노팅힐 이후 남(南)런던의 브릭스턴 등으로 옮겨가 1981년, 1985년, 1995년에 일어났다. 브릭스턴 역시 카리브 해 출신 흑인들이 정착한 곳이다. 세 차례 모두 백인 경찰의 범죄 혐의자 추적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가 원인이 됐다. 이번 런던 폭동은 1995년 폭동 이후 가장 규모가 크다. 폭동이 시작된 북(北)런던의 토트넘 역시 흑인이 많이 산다. 범죄 혐의를 받던 흑인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게 원인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톨레랑스(관용)의 나라’ 프랑스의 이미지를 구긴 2005년 파리 교외 폭동 역시 북아프리카계 소년이 경찰 추격을 받다가 사망한 사건이 원인이 됐다. 영국과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오일쇼크 때까지 ‘영광의 30년’이라는 경제호황기에 과거 식민 지배를 했던 나라들로부터 이주민을 적극 받아들였다. 독일도 ‘손님노동자(Gastarbeiter)’라고 해서 터키 등으로부터 이주민을 받아들였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진 세 나라는 지금 이주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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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