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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이주민 폭동

입력 | 2011-08-11 03:00:00


지금은 첨단 유행의 거리로 통하는 영국 런던 노팅힐은 1950년대 자메이카 등 카리브 해 국가에서 온 흑인 이주민이 최초로 정착한 곳이다. 영국 현대사에서 최초의 인종 폭동도 1958년 노팅힐에서 일어났다. ‘테디 보이스(Teddy Boys)’로 불리는 당시 신세대 백인 청년들과 흑인 이주민 청년들이 충돌했다. 그 이듬해부터 시작된 노팅힐 카니발은 이런 인종 충돌을 문화적으로 승화시킨 노력의 결과로 1999년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노팅힐’의 배경이 됐다.

▷인종 폭동은 노팅힐 이후 남(南)런던의 브릭스턴 등으로 옮겨가 1981년, 1985년, 1995년에 일어났다. 브릭스턴 역시 카리브 해 출신 흑인들이 정착한 곳이다. 세 차례 모두 백인 경찰의 범죄 혐의자 추적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가 원인이 됐다. 이번 런던 폭동은 1995년 폭동 이후 가장 규모가 크다. 폭동이 시작된 북(北)런던의 토트넘 역시 흑인이 많이 산다. 범죄 혐의를 받던 흑인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게 원인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톨레랑스(관용)의 나라’ 프랑스의 이미지를 구긴 2005년 파리 교외 폭동 역시 북아프리카계 소년이 경찰 추격을 받다가 사망한 사건이 원인이 됐다. 영국과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오일쇼크 때까지 ‘영광의 30년’이라는 경제호황기에 과거 식민 지배를 했던 나라들로부터 이주민을 적극 받아들였다. 독일도 ‘손님노동자(Gastarbeiter)’라고 해서 터키 등으로부터 이주민을 받아들였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진 세 나라는 지금 이주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런던 폭동은 버밍엄 맨체스터 리버풀 등 다른 대도시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아시아(주로 파키스탄 지칭)계 이주민도 가담하고 있다. 영국 백인 극우세력은 흑인과 힘으로 맞설 만큼 완력도 세다. 노팅힐 폭동처럼 인종 충돌로 비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도 경기 안산시 원곡동,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관악구 봉천동, 광진구 동일로 등에 이주민 근로자의 거리가 형성돼 있다. 노팅힐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배려와 지혜에 따라 폭동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고 카니발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음을 염두에 둬야 하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