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정치부 차장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통일세 논의’를 제안한 이후 그 답을 내놓는 셈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주어진 분단 상황의 관리를 넘어서 평화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경색된 남북관계에서 무슨 통일이냐’ ‘국면전환용 카드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럼에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꽉 막힌 남북관계 속에서 국내의 통일 논의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정부도 다양한 논의의 장을 마련했고 상당한 예산도 썼다.
하지만 지난 1년의 논의 속에 계속 따라다니는 의문이 있다. 무엇보다 통일을 대비하자는데, 대체 어떤 통일을 말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남북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통일 논의를 두고 많은 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의 급변사태는 고려하지 않는다. 점진적 평화통일을 준비하자는 것이다”고 강조한다. 한편 이 대통령은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한밤중에 그렇게 올 수 있다”고도 말한다.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듯 통일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원론적 발언으로만 보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마치 ‘임박한 산사태’처럼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통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는 이유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많은 이가 ‘머지않은 북한의 내폭(內爆)’을 점쳤다. 심지어 북한은 1주일, 열흘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던 학자들도 있었다. 그런 관측이 무색하게 북한은 당장 먹고살기도 어려운 상황을 17년이나 버티고 있다.
근래 김정일의 건강 이상과 후계체제의 불안정성은 다시 붕괴론에 힘을 실어줬다. 1인 독재체제에서 수령의 부재는 곧 체제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붕괴는 우리에게 재앙일 수도,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런 급변사태의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 전체의 공론을 모으는 통일론으로 이어지기에는 불충분하다.
통일 논의에 빈자리는 없어야 한다.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어떤 통일이 좋은지 국민적 공론을 이뤄가야 한다. 그 첫걸음은 남남통합 노력에 있다.
이철희 정치부 차장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