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위의 30년 독재자’ 죄수복 입고 “난 죄없다” 항변이집트 무바라크, 유혈진압-축재 혐의로 피고석에
3일 오전 10시경(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의 경찰학교에 설치된 임시 법정. 2월 물러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83)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죄수복을 입고 환자용 이동침대에 누운 상태였다. 2월 11일 하야 후 처음으로 세상에 얼굴을 나타낸 그의 옆에는 두 아들 알라와 가말, 그리고 충복이던 하비브 알아들리 전 내무장관이 보였다. 전직 경찰 간부 6명도 피고석에 섰다. 모두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유혈 진압을 주도하거나 권력을 이용해 축재한 혐의다.
이들 10명은 새장처럼 만들어진 높이 약 3m의 철창에 들어가 재판을 받았다. 미결수를 철창 안에서 재판받도록 하는 것은 이집트 형사법정의 관례이며, 시위 희생자 가족과 방청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무바라크에겐 굴욕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외신들은 30년 동안 철권통치를 했던 83세의 독재자가 철창에 들어가는 모습을 방송하며 “중동 역사, 세계 민주화 운동사의 한 획을 긋는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무바라크는 중동에서 국민에 의해 법정에 선 첫 독재자로 기록됐다. 이날 재판은 국영TV를 통해 이집트 전역에 생중계됐다.
무바라크는 올해 초 이집트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공권력을 동원해 시위대 840명을 죽이고 공공 재산을 빼돌려 부정 축재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최고 사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판사에게 “나는 모든 혐의를 완전히 부인한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침대 위쪽을 약간 세우고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쥔 채 왼손으로 동작을 취했다. 또 “질서를 회복하되 무력은 쓰지 말라고 명령했지만 경찰들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두 아들 역시 자신들의 부정 축재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옥외 스크린을 통해 재판을 지켜보던 반(反)무바라크 시위대들은 “그렇다면 누가 했다는 말이냐”며 조롱하고 스크린을 향해 신발을 던지기도 했다. 신발 투척은 이슬람권에서 최대의 모욕으로 간주된다.
재판이 3시간 넘게 진행되면서 무바라크는 자주 코를 후비며 철망 사이로 방청석을 흘끔흘끔 쳐다봤고 아들들은 연방 시계를 들여다봤다. 아메드 레파아트 판사는 “무바라크 부자는 15일 재판을 다시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이 1년 이상 걸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판사는 무바라크에게 샤름 알셰이흐가 아닌 카이로 인근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명령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