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은 작가는 “진짜 웃긴 코미디는 시치미를 뚝 뗀 코미디다. 차승원 씨가 그걸 너무 잘한다.”며 “그의 애드립은 애드립이 아닌 대본 연구 결과”라고 전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광고 로드중
'띵똥', '충전' 등 수많은 유행어를 낸 2011년 상반기 최대 히트작 '최고의 사랑'(MBC)이 16회를 끝으로 지난달 23일 막을 내렸다. 드라마를 끝내고 1주일간 사이판 여행을 다녀온 홍정은(37)·홍미란(34)자매 작가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서 만났다.
20%를 넘긴 시청률은 두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의 힘이 컸다. 코믹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톱스타 독고진(차승원)과 비호감 생계형 연예인 구애정(공효진)의 '목숨 건' 사랑은 2달간 안방 시청자들을 울고 웃겼다. 홍정은·홍미란 작가는 "한 달 동안은 무조건 쉬겠다"고 종영 소감을 말했다.
2005년 KBS2 '쾌걸 춘향'으로 데뷔한 뒤 '마이 걸', '환상의 커플', '미남이시네요',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연달아 히트시킨 두 사람은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는 오락프로그램 작가로 일했다. 작품을 할 때는 작업실에서 24시간 꼭 붙어 지낸다. 홍콩 코미디 배우 주성치 마니아라는 점도 똑같다.
광고 로드중
S#1. 홍대 정문 인근 커피숍 2층
홍정은, 홍미란 작가 자매가 청바지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있다.
기자 2명이 냉커피를 연신 들이키며 질문한다.
이하 홍(정)은/홍미(란)
Q: 어떻게 이런 재밌는 드라마를 쓰는 작가가 됐나. 홍정은 작가는 학교(이화여대 행정학과) 다닐 때 지금과는 이미지가 달랐다. 홍미란 작가도 사범대 출신이다.
정: 공부에 취미가 있었으면, 공무원이 됐겠지. 학교에 잘 안가는 학생이었다. 책이나 드라마에 더 관심이 있었고, 학과 선배들이 방송 작가로 들어가는 바람에 이 길로 들어섰다. 그러다 보니 동생도 들어와 있고. 우리 둘 다 자유로운 일을 좋아한다.
란: '쾌걸 춘향' 시놉시스를 냈는데, 갑자기 취소된 드라마 자리에 들어갔다. 기획하듯 낸 게 잘 돼서 쭉 드라마를 하고 있다.
Q: '쾌걸 춘향'때 구축했던 드라마적 특징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광고 로드중
MBC ‘최고의 사랑’ 4회 캡처.
정: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다른 것으로 갔다.
란: 원래 '미스터 틱톡의 연인'이 드라마 제목 후보 중 하나였는데 MBC 월화드라마 '미스 리플리'와 비슷해서 제외됐다. 독고가 심장을 체크하는 느낌으로 '틱톡'이 들어가서 넣은 것이었다. 만화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찍는다는 느낌으로 준 것인데, 따로 있는 만화는 아니다. 편집된 장면이지만, 독고진과 문 대표가 대화를 하다가 "원래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 꽃이 피지"라는 느낌을 주면서 구애정이 오버랩 되는 것으로 넣었다. 그런데 4회 엔딩이 좋게 나와서 느낌만 남겨두고 다르게 바뀌었다.
Q: 편집된 장면이 궁금하다. 재밌는 신이 많았다고 들었다.
란: 분량이 넘치니까 어쩔 수 없다. 만약 감독 판이 나오면 2회 정도 추가될 수 있을 정도다.
정: 애정이가 처음 독고를 거절하고 사무실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독고가 나이트클럽 전단을 비행기로 만들어서 날린다. 그 직전에 독고가 앉아 있을 때 애정이가 들어왔을 때 "어떻게 하지? 너무 의식한다고 할 텐데", "왜 자는 척하지" 라면서 애정이가 우왕좌왕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러면서 독고를 애정이 훑어보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 생겼네"라고 한다. 재미있게 잘 나왔다고 하는데 잘렸다.
광고 로드중
Q: '내 팬티 내놔' 신이랄까. 구애정이 독고진의 집에 들어와 숨는 장면도 재밌다. 그걸 후반부에선 뒤집었다. 독고진이 구애정의 집에 숨는 장면으로.
란: 반복되는 부분에서 재미있기도 하고, 감독님도 재미있게 찍어줬다.
정: 침대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숨는 장면은 코미디의 정석인데 써도 써도 재밌다. 나름 독고진과 구애정의 첫 베드 신이다.
MBC ‘최고의 사랑’ 11회 캡처.
란: 아주 '긴' 배우여서 가능했다. 워낙 차승원 씨가 키(188cm)가 크다. 힘들면 문을 열고 나오라고 했지만 창문을 열고 하면 더 독특하다. 가장 아름다운 각도를 연구해서 나온 장면이다.
정: 차승원 씨 턱 선을 잘 보여주려고 몸을 더 틀게 했다. 힘들었을 거다.
란: 독고의 '기럭지'가 더 강조됐다. 남자가 돋보이는 키스신이다.
Q: 야한 대사가 많았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었다. 독고가 침대를 쳐다보거나, 자고 가라고 했지만 그게 다다. 왜 그렇게 베드신에 인색했나.
란: "일생이 7년인 남자와 일생이 37년인 남자를 예뻐해 주는 방법은 달라", "불태워야지" 이런 대사. (웃음) 억울하다. 그래도 과거 작품보다는 스킨십이 많이 나왔다. 키스장면도 4번이나 나온다. 사실 야한 대사는 '구미호'가 더 많았다. "잡아먹고 싶어", "짝짓기하자" 등등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대사지만. 중의적인 거다. '최사'는 배우 나이가 있고, 섹시한 느낌을 가진 배우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있다.
Q: 차승원 씨 근래 작품 중에 가장 건전했다. 그 분 몸매가 19금인데.
란: 하하하. 굳이 베드신을 넣었다면, 독고진이 구애정에게 반지를 줬던 날 들어가야 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고, 성인 남녀니까.
Q: 마지막 회 악플 신도 의미심장하긴 했다. '독고진이 심장 수술 후 고자가 돼서 구애정과 위장 결혼했다'는 누리꾼 글. 독고진이 구애정에게 "아니라고 네가 인증 댓글 달아!"라고 했다.
란: 맞다. (웃음) 그냥 이렇게 평범하게 연애하면서 사나보다 그런 느낌으로 마무리 지었다. 대사는 수없이 많았다. 독고가 세리에게 "바디랭귀지만 했다"는 대사도 있고.
Q: 세리가 참 '쿨'하다. 독고진과 사귀다가 구애정 결혼식 들러리가 됐다.
정: 구애정의 행복을 빌어서, 축하하기 위해 들러리로 서는 게 아니다. 구애정을 마음에 둔 윤필주를 좋아하니까 구애정이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게 기뻐서, 즉 자기 행복을 위해서 그런 것이다.
란: 독고와 세리 모두 나 잘되는 일에만 관심이 많다. 서로 대놓고 서로 성격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나.
Q: 독고진이 주성치를 닮았다. 구애정의 앞을 독도하게 '쌩'하니 지나가겠다며, 천천히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은 '도성'에 나온 주윤발 패러디를 떠올리게 한다. 슬로우 모션인줄 알았는데, 주성치가 폼 잡고 천천히 걸었던 장면 말이다.
정: 진짜 웃긴 코미디는 시치미를 뚝 뗀 코미디다. 차승원 씨가 그걸 너무 잘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극복"한다. 웃기려고 작정하고 오버하면서 하지 않는다. 그게 주성치 식의 코미디인데 그런 부분을 차승원 씨가 잘 구현해 줬다.
란: 차승원 씨가 재미있게 해줄 걸 알아서 그런 장면을 많이 넣었다.
Q: 잘난 척해도 밉지 않은 게 독고진과 주성치의 또 다른 닮은 점이다. 주성치 팬으로서 'CJ7 - 장강7호' 는 못 보겠더라. 늙어 힘 빠진 모습이 싫었다.
란: '장강 7호'는 우리도 안 봤다.
정: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주성치를 위해선 팬픽(Fan Fiction)을 쓸 수도 있다.
MBC ‘최고의 사랑’ 1회 캡처.
Q: 내가 썼지만, '정말 웃긴 장면'은 뭐가 있나.
란: 1회에서 독고진이 해골 스카프를 매는 장면이다. 그런 동작이 재미있는 사람은 독고진 밖에 없을 거다. 잘렸지만, 독고진이 영어 책을 들고 '¤라¤라' 열심히 공부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엉터리 발음으로. 웃긴데 잘렸다.
정: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는 정말 많이 잘렸다. 세리가 처음부터 못된 캐릭터는 아니었다. 국보소녀가 욕을 먹으면 정색을 하면서 화를 내고 변론해주는 인물이다. 그런 장면들이 삭제된 상태에서 초반에 얄미운 모습만 보여줬다.
Q: "띵똥", "극복" 등의 대사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란: 죽을 것 같은 고통으로 회의를 통해서 짜낸다. 너무너무 힘든데 회의를 하면 나온다. 말을 만들 때 독고는 웃기는 사람이라는 설정을 주고 멋있는 말보다 구어적으로 쓸 수 있는 말들을 만든다.
Q: 흥행하리라 예상한 대사는?
란: "띵똥"은 1회 '세바퀴' 다짜고짜 퀴즈 신부터 쭉 나왔다. 독고라는 캐릭터가 뜨려면 이 대사가 떠야 했다. 드라마 망하지 않는 이상 떠야 하는 유행어였다.
MBC ‘최고의 사랑’ 2회 캡처.
Q: 독고진은 언제부터 '급'이 다른 구애정을 좋아한 건가.
란: 2회에서 애정이가 옛날 매니저에게 뺨을 맞는 것을 보고, 독고진이 돌아보는 장면이 터닝 포인트다. 애정이는 그렇게 두들겨 맞으면서 살아왔다. 독고도 1~2회 안에서 "넌 급이 다르잖아", "넌 구질구질해"라는 식으로 구애정이란 여자를 괴롭혔다. 독고도 애정이를 두들겼던 사람 중 한명이 된 거다. 그러다 또 두들겨 맞는 걸 독고는 목격한다. 하지만 독고는 그걸 외면하지 않는다. 동종업계 사람으로서 얽히면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걸 외면하지 못하면서 '애정'이 시작됐다. '국민 비호감, 뭐만 해도 욕먹는 저 여자'를 보면서, 나만 잘 살고 싶은 사람이었던 독고가 '아이언맨'이 돼 그 여자를 지켜주고 싶어 할 때 사랑이 시작됐다.
Q: 필주와 세리의 행방은?
란: 확실히 필주가 세리하고 이어지는 건 아니다. 세리가 필주를 쭉 좋아했으니까 언젠가 좋은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느낌? 독고도 그렇게 들이대서 애정이가 마음을 열었으니까.
Q: 마지막 장면이 특이했다. 독고진이 "이런 드라마 만난 걸 영광인 줄 알아!"라고 말했다. 순간, 드라마적 환상이 깨지고 현실로 돌아오게 됐다.
란: 그건 차승원 씨의 아이디어다. 현장에서 합의된 애드립이다.
정: 차승원 씨가 행동이나 말투로 승화시키면서 대사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대본을 열심히 연구해서, 외워서하는 애드립이라 쉽지 않을 거다. 차승원 씨도 엄청난 노력파이다.
란: 우리가 대본 지문에 '얼굴을 가리고 펴면서 극복'이라고 적어 놨다. 근데 차승원 씨가 발랄하게 손을 펴면서 "극↗복↘" 이라고 하니까 재미있는 거다. 운율을 주면서 "충~전", "띵!똥!" 한다.
정: 차승원 씨는 대본에 굉장히 충실하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대사를 하고, 애드립 역시 캐릭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한다. 대본을 무시하고 즉흥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 홍정은·홍미란 작가 인터뷰 ②편에 계속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