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합동 오케스트라 지휘 맡게 된다면 정말 꿈같은 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민권을 함께 갖고 있으면서 화합과 평화를 역설해온 현대 음악계의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이 27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동아일보DB
바렌보임과 디반 오케스트라는 다음 달 10부터 1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토벤 교향곡 1∼9번 전곡을 연주한다. 또 8월 15일에는 임진각 평화콘서트에서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한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민권을 모두 갖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그는 현재 독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관현악단과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 겸 종신지휘자로 활약하고 있다. 방한을 앞둔 그를 3일 독일 베를린의 실러극장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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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고기와 매운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바쁘다 보니 극동아시아 지역에 갈 시간이 많이 나지 않았다. 1984년 한국 공연은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임진각에서 연주를 하는데….
“북한 사람들을 위해 연주할 수 있었으면 하는데 불가능할 것 같다. 나는 분단된 한국의 갈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상상할 수는 있다. 한 국가에서 분단됐던 독일이 다시 통일된 것처럼 남북한도 통일될 것으로 확신한다.”
―왜 베토벤을 골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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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합동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진다면 지휘할 생각이 있는가.
“내 미션은 아니겠지만 가능하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 될 것이다. 음악은 단순히 사람의 생각을 하나로 묶는 것을 넘어 영혼을 동반하게 만드는 것이다. 북한에서 온 연주자 옆에 앉아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면, 그리고 같은 연주를 하기 위해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어떻겠나. 7시간 이상 같이 연습을 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다르게 보게 될 것이다.”
그가 디반 오케스트라를 창단할 때 아랍 국가에서만 200명이 넘는 연주자가 오디션에 몰렸다고 한다. 그 후 짧은 시간에 많은 성취를 이루면서 2002년에 스페인의 세비야로 오케스트라의 본거지를 옮겼다. 그곳은 7세기 동안 유대인과 무슬림이 평화롭게 살았던 곳이다. 이후 안달루시아 주 정부는 디반을 많이 도와줬고 슈타츠카펠레의 단원들도 와서 연주자들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는 “내가 남북한을 위해 디반 오케스트라를 연주할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나. 참 놀랍고 기쁘다”고 말했다.
―음악적으로 뛰어나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연주자들 간 실력 차나 갈등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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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단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당신에게 최근 중동의 민주화 투쟁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가.
“역사적으로 가장 엄청난 사건이다. 중동의 민주화 봉기는 정치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좀 더 잘살기를 원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서 비롯된 자연적인 봉기이다. 이집트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지만 오랫동안 나라 전체가 부패로 가득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길 기대한다.”
―69세인데 아주 건강해 보인다. 언제까지 일을 할 건가. 더 성취하고 싶은 게 있나.
“11월에 69세가 된다. 아직 7월이다(웃음).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나를 종신지휘자로 임명했지만 우리의 일이란 게 예술적인 결정에 따르지 계약상의 결정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음악은 매우 독특하다.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운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내일 연주할 때는 또 제로에서 시작한다. 이미 소리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음악의 매력이다.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데 감사할 따름이다.”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은….
“집중이다.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호기심도 중요하다. 호기심이 없으면 질문을 하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베를린=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