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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총장 “수사권 조정 합의안 훼손에 책임 통감한다”

입력 | 2011-06-30 03:00:00

■ 검찰 반발 일파만파




김준규 총장 거취 고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결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반발한 대검 검사장급 고위 간부 5명이 29일 ‘줄사표’를 제출한 가운데 이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검찰총장대회에서 환영 리셉션을 마치고 나온 김준규 검찰총장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김준규 검찰총장이 4일 거취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기로 한 것은 검찰의 최고 수장으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검의 한 간부는 29일 “직(職)을 걸고 수사권 조정에 사인했는데 합의안이 훼손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혀 재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실상 사퇴할 것임을 강력 시사했다.

이에 앞서 대검의 검사장급 간부 전원은 63년의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집단 사표를 냈다. 이는 검경의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정치권의 결정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표시이자 김준규 검찰총장에 대한 퇴진 압박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일선 지방검찰청에서도 평검사 회의가 연달아 열렸다. 일각에서는 또 한 번의 ‘검란(檢亂)’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대검의 긴박했던 하루

이날 오전 7시 반 출근한 홍만표 대검 기획조정부장(검사장)은 검찰 내부게시판인 ‘이프로스’에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건강이 많이 상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뒤 곧바로 박용석 대검 차장에게 사표를 제출하고 대검 청사를 떠났다. 수사권 조정 논의를 함께 이끌었던 구본선 정책기획과장과 김호철 형사정책단장, 윤장석 형사정책단 연구관도 홍 검사장과 뜻을 같이했다. 하지만 이들의 사직서는 홍 검사장의 캐비닛에 남았다.

홍 검사장은 청사를 나선 뒤 곧바로 외부와 연락을 끊고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열리는 동안 매일 밤늦게까지 대책회의를 하며 눈의 실핏줄이 터지고 얼굴 근육이 마비되는 등 건강이 크게 악화된 상태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는 홍 검사장의 사의 표명이 건강 문제보다 법사위가 정부 합의안을 일방적으로 뒤집은 것에 대한 항의 표시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홍 검사장은 법사위가 수정안을 통과시킨 직후 주변에 “이번 결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물러나겠다”는 결심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홍 검사장이 이프로스에 남긴 글은 김 총장의 지시로 곧바로 게시판에서 삭제됐다. 김 총장은 “홍 검사장의 사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 만류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홍 검사장의 사퇴 소식이 알려지자 검찰 내부는 술렁였다. 대검은 이날 낮 12시부터 2시간가량 중간간부급 회의를 열었다. 오후 2시부터는 대검 연구관(평검사)들이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날 오후 늦게 김홍일 대검 중수부장을 비롯한 검사장급 간부들도 결단을 내렸다. 이들은 모두 홍 검사장과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로 사표를 제출했다.

○ 법사위 결정에 격앙

이날 전국 각지에서 평검사 회의가 열리는 등 일선 검사부터 검사장까지 이번 수사권 조정 논의의 부작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지휘에 관한 규정을 법무부령으로 둔 것은 대통령이 수사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의미인데 대통령령으로 바꾸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될 수 있다”며 “경찰 주장이 대통령령에 그대로 반영되면 검찰의 수사지휘 체계도 완전히 붕괴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법무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 한자리에 모여 서명한 정부 조정안이 법사위에서 뒤집힌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경찰이 집단적으로 반발한 뒤 국회가 수정안을 통과시켰다는 점에서 “경찰의 생떼쓰기 전략에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령은 두 기관이 법률 조문에 완전히 합의해야 국무회의에 상정되는 만큼 향후 검경 간 끊임없는 갈등이 불거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 집단 사퇴로 이어지나

대검 간부들이 모두 사표를 제출함에 따라 일선 지검의 검사장이나 평검사들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동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8년차 평검사는 “젊은 검사들 사이에서 ‘장관과 총장이 총대를 메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귀띔했다. 이프로스에는 “검찰의 최고 어른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글이 오르기도 했다. 한 지방검찰청의 간부는 “만약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검사들의 동조 사표가 줄을 이을 것”이라며 현장의 격앙된 목소리를 전했다. 검찰 일각에서는 국회 본회의에서 수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수뇌부가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밤 “이명박 대통령이 대검 상황을 보고받은 뒤 걱정하셨다”며 “법무부 장관이 검찰 수뇌부를 상대로 설득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법사위의 ‘문구 수정’은 정부로선 유감이지만 청와대가 일일이 나서서 국회와 각을 세울 만한 사안이라고 보진 않는다”며 “지금까지의 수사 현실을 법제화한다는 검경 합의정신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만큼 (검경 가운데) 어느 한쪽에 유리한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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